Maker | Art in Post |
---|---|
Origin | Made in Korea |
구매방법 | |
---|---|
배송주기 |
정기배송 할인 save
|
옵션선택 |
할인가가 적용된 최종 결제예정금액은 주문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명호는 말한다. “작은 캔버스를 하찮은 것들 뒤에 드리움으로써 자연에 묻힌 그것들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캔버스에 그것들을 그리는 대신 그것들 뒤에 캔버스를 드리우는 일뿐이지만 예술 행위의 본래 뜻도 여기에 있다. 이 사람이 준 편지를 저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 내 어려서 꿈은 우편배달부였는데 가장 단순하고도 말초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아주 보람되고 내게 제일 알맞은 일이라 여겼다. 예술은 그 꿈의 다른 형태다. 세상의 한 구석을 들추고 환기하는 일, 이성과 감성을 객관화해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내게 예술이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느닷없이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는 생명체’란 생각이 든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할 수도 있는 존재이자, 제 어미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 일찍이 카뮈(Albert Camus)가 이방인의 뫼르소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가치를 매기는 것만큼 거창하게 인간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듯 말이다. 미술의 여러 층위에서 그 모호한 존재 인간은 대상이 되지만, 이명호의 사진엔 좀처럼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이미지와 오브제가 제각각 있을 뿐이다. 어떤 해석도 원치 않는다는 듯 담담하고 시크하게, 인간이 가치를 매기는 것만큼 크게 의미심장할 까닭이 없다는 듯 그렇게 존재한다.
<Tree... #2> 2012 종이에 잉크 104×152cm
작가 이명호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나무다. 사진을 행위로 환기하거나 사진을 하는 행위를 환기하고자 하는 뜻으로 ‘사진-행위(PHOTOGRAPHY -ACT)’ 프로젝트를 설계한 작가는 첫 작업으로 ‘나무(TREE)’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저 흔해서 나무를 피사체로 선택했을 뿐 꼭 나무라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행위에 방점을 찍고자 귀한 것을 피하고 흔한 것을 살피는 과정에서 골라진 게 나무였다. 그가 완성한 화면엔 구체적 대상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사뭇 추상적이며 시간을 내포한다. ‘사진’은 시공간의 한 점에 필름을 잠시 담그고 다시 꺼내는 매체다. 소위, 피사체를 향한 무한의 관점 가운데 하나의 ‘관점을 드러내는’ 작업인데, 역설적으로 그 ‘관점을 드러내는 즉시 피사체의 본질로부터 오히려 멀어지는’ 모순에 빠진다. 보는 이에게 그 역설을 직시하도록 하는 작가적 태도가 작업에 오롯이 구상과 추상이 공존케 한다. ‘나무’ 시리즈의 경우, 일견 나무를 잘 보여주기 위한 작업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은 잘 보여주려 할수록 더 보이지 않는 역설을 볼 뿐이라 구상에서 추상까지 보이는 것이다.
<Tree #2> 2006 종이에 잉크
앞서 나열했듯 국가와 장르를 넘어 종횡무진 하는 작가는, 그만큼 다작을 한다. 그러나 모든 작업은 분명한 형식과 구분을 따르는데, 우선 그를 대표하는 ‘사진-행위’ 프로젝트는 세 개의 범주로 나뉜다. ‘나무’ 시리즈 등을 담는 ‘재현(RE-PRESENCE)’의 카테고리, ‘신기루(MIRAGE)’ 시리즈 등을 담는 ‘재연(RE-PRODUCE)’의 카테고리,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NOTHING BUT)’ 시리즈 등을 담는 ‘사이 혹은 너머(BETWEEN OR BEYOND)’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그리고 카테고리별 개념과 형식을 실험하는 ‘작명 안(못) 한(NOT TITLE(D))’ 시리즈 등을 담는 ‘무제 혹은 미제(UN-TITLE OR NO-TITLE)’의 카테고리, 사회에 사용하는 ‘적용 혹은 준용(USE AS THIS OR USE AS THAT)’의 카테고리 등 몇 개의 범주가 더 있다. 그런 그가 기존 작업의 스토리와 맥락은 유지하면서 전혀 색다른 형식의 작품을 최근 완성하고 있다. 9월 22일부터 11월 25일까지 선보이는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 내걸린 신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명호 작품과 사뭇 다르다. 근래 변화하는 작업 방식은 어떤 연유에 기인한 것이며 이러한 시도를 할 때 가장 중심에 두는 요소, 기준은 무엇일까?
<섬_[드러내다] #1'> 2020 전체(종이+잉크)-부분(종이+잉크) 104×104cm
새로운 연작 ‘_[드러내다]/_[drenæna]’에서 차용해 제목으로 내건 <[드러내다]>전은 그의 대표 연작인 ‘Tree’와 ‘Nothing, But’을 비롯해 ‘_[드러내다]’까지 30여 점으로 구성됐다. ‘Tree’와 ‘Nothing, But’ 연작에 나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하얀 캔버스는 피사체가 된 나무를 단순한 풍경 속 정물이 아닌 회화와 같은 ‘재현’적 이미지로 거듭나게 한다. 또한 광활한 사막 속 펼쳐진 캔버스는 예술의 ‘재연’적 성격에 관한 담론을 상기시킨다. ‘[햐:야치]’, ‘[까:마치]’, ‘[햐:야치(도)][까:마치(도)]’로 이름 붙은 세 개의 공간에 따라 작업 범주를 나눈 전시는 각 범주마다 특정 색을 부여했다. ‘[햐:야치]’는 ‘재현’, 예를 들어 ‘나무’ 시리즈 등을 담는 범주의 작업으로 꾸며 ‘WHITE’ 공간으로, ‘[까:마치]’는 ‘재연’, 예를 들어 ‘신기루’ 시리즈 등을 담는 범주의 작업으로 꾸며 ‘BLACK’ 공간이 되며, ‘[햐:야치(도)][까:마치(도)]’는 ‘사이 혹은 너머’, 예를 들어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시리즈 등을 담는 범주의 작업으로 꾸며 ‘GREY’ 공간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전시의 방점은 ‘_[드러내다]’란 표기가 붙은 9점의 신작에 찍힌다. 전체에서 부분을, 혹은 전체에서 전체를 ‘들어내서 드러내는’ 작업들은 마치 하얗게 비어있는 종이를 액자에 넣은 것처럼 보이는데, 애써 사진을 만들고, 도로 사진을 없앤 이 작업은 사진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종이에 잉크를 얹는’ 방법으로 사진을 만들고, 다시 ‘종이에서 잉크를 걷는’ 방법으로 사진을 없앤 것이다. [드러내다]는 동음이의어 ‘드러내다’와 ‘들어내다’의 발음 기호 표기로, 각각 ‘나타나게 하다’와 ‘사라지게 하다’는 사실상 반대의 의미를 지닌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_[드러내다]’는 이명호 작가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캔버스-효과(canvas-effect) : 카메라-효과(camera-effect)’와 같은 철학적 개념과 그 형식을 고스란히 담은 표현인 셈이다.
<하찮은 것들> 2020 종이에 잉크 26×40cm
창원에 내건 <나무 그리고 색_창원 #1>은 그의 작업에 줄곧 등장하던 흰색 캔버스가 홀로그램 화면으로 바뀌고 평면의 인화된 사진이 아니라 야외에 설치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2020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출품된 <하찮은 것들>은 하얀 캔버스가 피사체의 뒷면에 자리했던 기존 작업과 달리 작은 캔버스가 숲속의 ‘하찮은’ 풀 따위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살피면 자연에 묻힌 것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고정되지 않은 재현의 본질을 탐색하는 이명호의 기조는 흔들림이 없다. ‘사진-행위’ 프로젝트의 개념과 형식을 실험하는 ‘작명 안(못) 한’ 시리즈 등을 담는 ‘무제 혹은 미제’의 카테고리, 사회에 사용하는 ‘적용 혹은 준용’의 카테고리 등에 속할 작업을 준비하는 그는 ‘이명호’라는 브랜드로 소통하는 갈래와 프로세스를 견고히 다지고 있다. PA
이명호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