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 Art in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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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의 전공은 애초 예술이 아니었다. 캐나다에서 그가 처음 시작한 공부는 바로 정치·철학. 늘 책을 펴고, 글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면서 이에 파묻혀 살았던 작가는 이제 ‘텍스트를 독해하는 것’이 콤플렉스라 말한다. 나고 자란 곳을 벗어나 지낸 시간은 그에게 일종의 불안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문화와 언어, 바뀐 주변 환경은 작가가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 자신의 시선, 그리고 새롭게 정의되는 ‘사물’들은 그에게 불변할 것 같은 진리도, 사회 구조도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그리고 이 경험은 결국 그가 깊숙이 파고들었던 글의 굳건한 맥락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그의 작업 전반에 드러나는 텍스트는 단순히 재료가 아니다.
콤플렉스가 늘 그렇듯이 작가에게 이는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그가 시각 예술로 진로를 틀었을 때 어찌 보면 글로부터 ‘도피’한 것이었다고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는 그곳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모르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 맥락을 이해하고 이것으로부터 생각을 쌓아가기 위해서 언어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중요한 디딤돌인데, 예술에서 언어는 그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굳이 작가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성립되기에 전주연은 자신이 작가가 된 것이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여기와 여기 사이에는 절대로 충분한 거리를 만들 수 없어> 2018
철, LED 조명, 투명 필름, 카메라 렌즈 가변설치
작업의 시작점은 분명 ‘주관적 경험’이다. 그리고 이 경험의 대부분은 현재 텍스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글은 대부분 앉아서 눈으로 읽는 행위를 통해 소화된다. 작가는 이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활동적인 퍼포먼스를 작업에 끌어왔다. <Field of Study>란 작업이 대표적이다. 과거 캐나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사람들이 “너의 필드는 무엇이냐”고 물어봤단다. 처음 발 디딘 학문의 세계에서 누군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신선했던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읽은 플라톤의 『파이론』에서 글을 차용해 문자 그대로 필드를 만들었다. 투명 필름에 글자를 인쇄하고 이를 일일이 잔디처럼 바닥에 깔아 문자 그대로 뛰어놀았다. 여기에 투입된 노랑 풍선 하나는 터지기 쉬운 오브제로, 글 모서리에 찍혀 상처받았던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때리기 2> 2018 퍼포먼스 비디오 4분 38초
이 문자 필드 위에서 골프도 치고 배드민턴도 치며 마음껏 이를 훼손한 그는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자신이 직접 행위자가 되는 것이 작업의 가장 큰 핵심이었다. 글에 대한 트라우마는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롯이 본인의 것이기 때문에 타파하는 것도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줄넘기할 때 지치고 힘든 숨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운동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 행위를 할 때 과거 텍스트와 맞서야 했던 나의 무수한 경험들이 투영됐다.” 한동안 자신이 모든 퍼포먼스를 행하는 걸 고집했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타인’이 자신의 경험을 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뒤집어 보면 관객이 보는 작가 역시도 타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리게 되면 행위자와 작가 간의 소통이 어떻게 긴밀히 이뤄지냐에 따라 여러 층위의 해석이 생겨날 수 있다. 작가는 작업의 의미가 퍼포머(타인)에 의해 한 번 더 왜곡되고, 이후 관객에 의해 겹겹이 굴절될 결말이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필드 오브 스터디> 2017
투명 필름 위 아크릴릭 채색 500×900cm
그가 777레지던시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가장 최근 선보인 개인전 <간지럼 태우기와 휘젓기와 때리기와 반전시키기>는 여전히 글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일관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작업이다. 말 그대로 텍스트를 희롱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목으로 차용해 글을 쓴 각목을 깃털로 간지럼 태우고, 노란색 시폰(chiffon)을 설치해 나비의 날갯짓처럼 텍스트 사이사이를 휘젓게 만들었으며, 줄넘기 채로 때려 글을 넘어뜨리고 반사지에 글을 반전 시켜 왜곡하는 방법을 통해 작가가 직접 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방법으로 글을 괴롭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결국에 작가가 직접 행할 수 있을 만큼 손쉬운 방법론이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조라고 볼 수 있다. 전주연의 작업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바로 훼손이다.
자신이 만든 작업을 직접 손으로 부수고, 괴롭히는 행위 자체가 작품이기 때문에 작업은 두 번 다시 같은 모습으로 재연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파괴되어 가는 작업은 아무래도 굳건한 글의 맥락에서 탈피하고 싶은 작가의 갈망을 투영한 것일 테다. ‘인문학’이란 깰 수 없이 단단한 철학 속 몸을 담았던 작가는 예술을 통해 자유로움을 꿈꿨다. 단번에 이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 꿈은 어떤 면에서 자신이 절대 그 틀을 깰 수 없다는 좌절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작업이 자신이 가진 한계를 전복하는 ‘과정’임을 얘기한다. 텍스트를 부수고, 무너뜨리며 괴롭히는 일 모두가 전주연과 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를 보여준다.
전주연
작가 전주연은 2014년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 조형미술과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2017년 같은 대학 대학원의 조형문화예술학과를 나왔다. 지난해 777레지던시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3기 작가로 선정된 그는 2017년 성북예술창작터에서 연 개인전 <TEXTured>을 비롯해 스페이스선+에서 <The Reading Room>전, 777레지던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간지럼 태우기와 휘젓기와 때리기와 반전시키기>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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