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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많은 물음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 속한 자신에 관한 의문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지난해 박진희의 국내 첫 개인전 〈예민함, 그 사소함에 대하여〉는 ‘예민함’이라는 특정 감정에 대한 사회 구성적 이미지와 편견을 ‘블루맨’이라는 허구의 주인공을 통해 은유한 전시다. 여성 예술가 자신에게 덧씌워진 수많은 가면 중 하나인 예민함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작은 방들로 구성된 일곱 개의 전시장마다 들어찬 음울하고도 스산한 파랑들은 자신에게 고착된 이미지를 향한 불편한 감정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전시는 앨리스의 세계에 발을 들이듯 작가 내면의 동굴로 걸어 들어가 마트료시카(Matryoshka) 인형을 열어 그 마지막 인형을 마주한 느낌을 준다. 특히 박진희 작업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환상성은 분위기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감정적인 동요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작가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가 된다.
박진희, 송근도 <블루맨(Blue Man)>
2017 단채널 영상 00:14:00
첫 개인전에서 출발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서사는 곧 여성 일반으로 확장되었다. 작가는 최근 여성주의의 흐름과 더불어 현대 사회라는 공간과 여성의 개인적 삶이 맺는 상호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올해 말, 개인전 〈나의 절망을 바라는 그대에게〉에서 작가는 새로운 형식의 여성 괴물을 제시한다. 그는 신화 속 ‘메두사’의 종교 및 사회문화적 기호들을 재해석하고 이를 공포 영화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다. 박진희의 ‘메두사’는 생물학적 성과 젠더, 신과 인간, 동물 등의 구획이 허물어진 혼전(混戰)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메두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역사적 내러티브와 현실 사이의 무효한 간극으로부터 출발한다.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이야기』에서 ‘메두사’는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사회적 비난과 권력에 의해 숨어 지내며 눈을 마주친 사람들을 돌로 만드는 저주에 걸린 인물로 그려진다. 타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막고자 하는 피해자의 방어적 움직임을 괴물 혹은 악녀로 소비하는 신화적 태도는 현재 사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최근 작업의 기반이 되었다.
<삼키고 싶지 않은 말> 2018 단채널 영상 3분
이번 전시에서는 ‘메두사’라는 상징적 인물을 중심으로 설치와 무빙이미지를 선보인다. 작가는 다양한 조형적 시도를 통해 메두사의 저주에 관한 이면의 서사를 살피고 거세와 같은 능동적 행위를 통해 초월적 극복을 도모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고착된 여성의 이미지를 재고하고 이로부터 반향의 제스쳐를 취하는 점은 현실을 이해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작가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이렇듯 최근 박진희의 관심과 움직임은 작년 전시 〈예민함, 그 사소함에 대하여〉의 문제의식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특정한 상징으로서의 개인인 ‘블루맨’이 작가 자신의 구체적 서사를 다루었다면 이번 전시의 ‘메두사’는 작가의 아바타로서 집단적 대표성을 띠며 표현 방식 또한 좀 더 추상화되었다. 이는 개인이 투영된 사적 문제의식을 공공성을 지닌 사회 전반의 일반적 사안으로 끌어올리려는 작가의 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환상성의 측면에서도 파편화된 신체 일부와 결합한 붉은 색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블루맨’에 이어 개별 색의 상징적 속성들을 경유하여 미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만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덧붙여, ‘블루맨’과 ‘메두사’ 모두 섹스나 젠더 같은 사회적 특징과 기호가 불확실한 ‘-less’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이러한 전개는 앞으로의 방향성을 포괄하는 작가의 순차적 계획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Red Hands> 2018 단채널 영상
누구나 마음속 자신만의 정원이 있다. 최선을 다한 치열한 삶으로부터 얻어낸 훈장들을 정원에 심어둔다. 누군가 타인의 소중한 정원을 훼손한다면 이는 흙을 뚫고 움틀 강인한 싹을 자르기 위함일 것이다. 이러한 공격은 땅 아래 숨겨진 가능태로서의 씨앗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도 같다. 모든 혐오는 무지로부터 온다. 온전히 알 수 없기에 장악하거나 지배하지 못한다는 통제 불가능성의 공포는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여성 괴물로 태어났다.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딛고자 했던 강인한 여성이 영웅이 아닌 괴물이 되는 다소 익숙한 서사들은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이다. 현실적인 환상 속에서 망가진 정원을 끌어안고 ‘나의 절망을 바라는’ 누군가에게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적어도 상상할 수 있는 고통과 슬픔은 아닐 것이다. 불(不)의 언어들이 담길 앞으로의 작업을 기대한다.
박진희
박진희는 2012년 런던대학교 슬레이드 스쿨 오브 파인아트 조소과를 졸업하고, 2016년 런던 왕립예술원 조소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첫 개인전 <예민함 그 사소함에 대하여>를 갤러리 777에서 열었다. 영국 캠든아트센터, 우크라이나 예르밀로프 센터, CICA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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