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213, Jun 2024

길 위에 도자

2024.4.18 - 2024.7.2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문선아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 디렉터

Tags

길 위에 도자, 이민하는 삶


도자는 과거부터 하이 테크놀로지(high technology)의 산물이었다. 흙에서 태어나 도공과 가마의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하나의 완성품으로 도자는 세계의 곳곳에 전파됐으며, 특히 유럽으로 넘어가 중국풍, 즉 시누아즈리(Chinoiserie)를 일으키기도 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전시 <길 위에 도자>는 이러한 도자에 아시아를 환유하고 숙명적인 ‘이민’과 ‘이주’를 공동의 주제로 불러온다.


인류의 역사적 이동에 따라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확산한 도예 문화는 특히 인종과 문화의 융합이 활발히 일어나는 미국에서 현대미술로 재해석되고 있다. 린다 응우옌 로페즈(Linda Nguyen Lopez), 에이미 리 샌포드(Amy Lee Sanford), 세 오(Se Oh), 스티븐 영 리(Steven Young Lee), 참여작가 4명은 이민 2세대 혹은 입양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갖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개인의 이주 서사에서 비롯한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 탐구의 맥락에서 발현된다는 점에서 특징지을 수 있다. 태어난 땅을 떠나 다른 곳에서 적응해 살아야 하는 이민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이주보다 더 심오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눈에 물이 흐르는 듯 유선형으로 제작된 흰 좌대가 공간을 자연스레 구획한다. 그리고 로페즈의 작업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굵은 털실로 짠 듯 몽실몽실 귀여운 작품들은 다른 재질을 자랑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도자로 만들어졌다. 관람객은 작업에 앉거나 만지며, 보이는 것과 사뭇 다른 도자의 물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베트남·멕시코계 미국 도예가로 서양 교육 체계에서 아시아 도자기를 공부했다.


특히 도자의 질감이나 색상에 관심을 가지고, 일상의 사물들을 주요 모티프로 실험적인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자신의 베트남, 멕시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해 도자에 녹여내는 작가는 어린 시절 주변의 사물을 통해 베트남인 어머니와 소통했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일상의 사물들을 의인화한 도자 조각들을 제작한다. 이러한 경향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Furry’ 연작은 청소 걸레의 먼지, 옷의 보풀 등 아주 작은 사물에 집중한다.



에이미 리 샌포드(Amy Lee Sanford) 
<무한한 호, 문화전당로> 설치 전경



손으로 빚어 만든 길쭉한 층을 겹쳐 ‘먼지떨이’나 ‘대걸레’ 등 일상에서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것들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보여 준다. ‘Furry’와 더불어 주요 연작인 ‘Truths’는 직접 앉을 수 있는 가구형 작업으로, 베트남의 자연적인 모티프에서 비롯한 조각 형태와 멕시코의 모자이크 요소를 차용해 다채롭고 운동감 있는 형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작업세계는 작가가 이민 세대로 겪은 언어적 어려움과 부모님의 문화적 유산에 영향받은 성장 배경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광주에 2주간 머무르며, ‘Furry’와 ‘Truths’ 연작 일부를 완성했다.

한편 샌포드는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캄보디아계 미국 현대미술 작가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출생했지만, 1970년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정권으로 발발한 킬링 필드로 인해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성장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집단 트라우마와 치유를 작업의 주요 주제로 다루는 그는 캄보디아인의 정체성을 역사적 사건에 영향받은 개인의 삶을 통해 보고자 했다. 작가는 1970년대 루주 정권하에서 자행되었던 학살 사건의 상흔이 현재에도 여전히 작가 자신을 비롯한 캄보디아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샌포드는 캄보디아의 흙으로 빚은 도기들을 깨트리고 다시 실로 이어 붙이는 퍼포먼스 작품을 해왔는데, 이를 통해 역사적 상흔으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도기의 파괴와 이를 다시 이어 붙이는 행위의 반복은, 집단에 가해진 정권의 폭력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이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담담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영상 작품 <해방된 문화전당로>는 이전의 도기를 깨트리고 이어 붙이는 퍼포먼스 <Full Circle>의 연작으로 광주 5.18의 상징인 구 전남도청을 품고 자리한 문화전당에서 확장되고 있다.

세 오는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 도예가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생후 9개월에 미국 테네시주로 입양됐다. 이러한 배경은 작가가 자신의 뿌리인 한국과의 연결점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동기로 작용하며 작업세계 전반을 관통한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찻사발 기형을 가져오거나 고려청자 유약을 사용하는 시도에서 드러난다. 세 오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모티프들에 관심을 둔다. 작품 곳곳에 주름진 형태로 튀어나온 모습은 식물과 꽃의 조형에서 착안했다. 작가는 어렸을 적 자연의 유기적인 생태계에 매료되었던 것을 계기로 인간관계 또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작품에 투영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백자에 작가는 한국의 재료인 고려청자 유약을 입힌다.




세 오(Se Oh) <달항아리의 순환> 설치 전경



외형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비롯한 생명의 약동감과 유기성을 담아 표현하며, 재료적으로는 청자 유약을 사용해 자신의 한국적 유산과 연결한다. <Self-portrait>은 한국의 찻사발 형태를 사용해 반은 청자유약을, 반은 밝은 하얀색의 미국 유약을 발라 마감하여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드러낸다. <Goldfish Ponds>와 <Still Waters>, <Water Poppy>는 꽃, 연못 등을 모티프로 삼았다. 자연의 모습을 도자에 담으면서도 <Inner Han>, <Purge>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노를 구멍 뚫린 기형을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 <Porcelain Garden>은 작가가 광주에 한 달간 머무르며 작업한 작품으로, 현지 리서치를 통해 한국 식물의 조형성에서 영감을 받고 한국의 흙을 사용해 만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도자는 또한 광주에서 작가가 만난 사람들을 표상한다.

한국계 이민 2세대로,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 리는 이민 세대로서 가지는 장소와 소속에 대한 질문에 직면해 왔다. 이러한 배경에서 서양 교육 체계 안에서 아시아 도자를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했는데, 특히 문화적 영향을 발생시키는 원천에 관심을 가지며 탐구해 오고 있다. 작가는 2006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대표 도예 레지던시 기관인 헬레나 아치 브레이 도자 재단(Archie Bray Foundation)의 아트 디렉터를 16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영 리는 도자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는 기형 면에서 형태를 찌그러트리거나 깨트려 완벽한 균형미를 최고로 여기는 도자의 전통적인 관습에 도전한다.


작품의 첫인상에서 부서지거나 흘러내린 항아리의 조형성이 먼저 다가온다. 이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그러진 형태를 오롯이 활용해 그린 다양한 문화권의 도자 문양과 기형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통적인 도예의 어법에서 벗어난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또한 작가는 용, 호랑이, 구름 등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던 문양이 현대에도 캐릭터로 녹아들어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주요 문양으로 사용하여 도자의 현대성을 강화한다. 형태의 불완전성, 충돌하는 이미지의 이질성, 문양의 현대성은 그의 작업에서 지속적이고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현대 도자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미국에서 신작을 제작했고, 광주에서도 2주간 머물며 작품을 제작했다.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촉각 전시물과 점자가 마련되어 손으로 도자를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 관람자에게 전시 경험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일반 관람객에게도 이주라는 주제를 시각적 차원이 아니라 공감각적 차원으로 제시한다. 이 지점에서 도자는 시각적 대상화의 지점을 벗어나 체험의 영역으로 승화한다.


<길 위에 도자>는 양식사적 해석이 아닌 인류의 역사와 맞물려온 이민과 이주라는 현상을 통해 현대 도예를 새롭게 읽어낸다. 전시를 위해 작가들은 미국을 떠나 광주로 이동해 조선대학교에서 일부 작품을 창작했고, 그 여정의 흔적을 도자에 담아 이주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빚어냈다. 내년이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 10주년을 맞는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아시아 담론을 위해 만들어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미래가 어디로 가는 지 그 이동을 우리가 길 위에서 살펴볼 차례다.  


* 전시 전경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More Article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