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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3, Jun 2024

2024 천만아트포영

2024.5.13 - 2024.5.31 여의도 삼천리빌딩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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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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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은 거침이 없다


봄을 지나 여름이 시작되는 5월, 여의도 삼천리 빌딩에서 전시 <2024 Chunman Art for Young>이 막을 올렸다. 올해로 2회차에 접어든 행사는 삼천리그룹 장학재단 천만장학회 주최하에 시각예술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전으로, 최종 선정된 33명의 작품이 발표되어 이목을 끌었다. 최고상인 천(天)은 김시온, 지(地)는 강현진·성유진 그리고 해(海)는 강민서·정서연·최지수에게 돌아갔다. 본 행사가 차세대의 유망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이제 막 창작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미술을 근거 삼아 펼쳐 내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전시는 김시온의 조각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소리로 그 시작을 알린다. <온 곳으로 신호를 보내며> (2023)는 콘크리트 조각과 그것에 연결된 철봉이 반복적으로 회전하며 그리는 궤적을 보여준다. 철봉 끝에 매달린 작은 콘크리트 파편과 종은 일종의 무게추가 되어 조각과 균형을 이루다 어느 순간에 조각을 뒤뚱거리게 만든다. 이내 조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나 이 중심 잡기가 무색하게 모터의 계속된 움직임은 조각을 또다시 흔든다. 김시온은 사회가 부여하는 개인의 다양한 역할이 겹칠 때 발생하는 긴장을 가시화한다.


그가 감지한 일상 속 긴장 상태는 <너의 한걸음>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두 켤레의 낡은 신발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근거리며 이동하지만, 그 둘을 잇는 전선은 이들이 서로를 등진 채 무한히 움직일 수 없도록 한다. 두 작업은 무심한 듯 반복적인 노동을 수행하다가 각각 균형을 잃거나 서로가 너무 멀어질 때 비로소 종이 울리고 전선이 팽팽해지는, 일종의 ‘신호’를 보낸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이 공회전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몸짓과도 같다. 불안정을 담보로 하는 신호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작업이 만들어 내는 소리처럼 나지막이 남는다.

왼편으로 걸음을 옮기면 전시장 가벽을 가득 채운 채 걸려있는 성유진의 작업을 마주하게 된다. 높이 약 3m, 폭 2m에 달하는 <믿기와 미끼>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 삼각형들이 맞물려 이룬 기하학적 군집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작업은 흐르는 물살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이를 단단한 구조로 옮긴 듯한 인상을 준다. 그 요철을 자세히 보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다가 작업의 뒷면까지 보게 된 순간, 견고해 보이던 조각들이 얼마나 헐겁게 접합되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은 한순간의 휩쓸림으로 구성되기도, 또 한순간의 와해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주장하는 성유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음을 종잇조각의 결합방식과 대응시켜 제시한다. 그가 집단의 특성으로 양면성에 집중한다면, 박정선의 <(Hea)Vy Duty>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서서히 집단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태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부단한 노력에 비해 결과가 허무한 개미집과 기계의 움직임으로 주체성을 상실해가는 집단을 은유한다. 두 작가는 미디어가 쏟아 내는 단편적 데이터가 집단을 뭉치게 하는 원인임을 지목하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른데, 성유진의 작업은 노동집약적 표현을 수반한 진술로, 박정선의 작업은 블랙 코미디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성유진 <믿기와 미끼> 2024
 하네뮬레에 콜라그래피 366×203×20cm



전시장 한편에 또 다른 거대한 작업이 눈길을 끈다. 한 사람이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는 최지수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만약 작품이 일반적인 시야보다 높은 좌대 위에 놓인다면, 혹은 명예를 상징하는 형태를 입어 제시된다면 그것이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기존 권력의 방법론을 빌려 구축한 어법은 각각 <번개>와 <훈장>에 적용된다. 그의 의도대로 관람객은 <번개>를 우러러보고, <훈장> 속 이미지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어딘가 뭉뚱그려진 번개의 형상과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훈장 속 인물은 작가가 힘을 부여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쉽게 밝히지 않는다. 이 의미심장한 추상성으로 최지수는 자신이 만들어 내는 힘이 사실상 누구에게든 유효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높은 곳에서 시작해 점차 아래로 내려오는 시선이 바닥에 놓인 <키링>에서 멈춘다. 일련의 수직적 배치는 세 작업에 공통으로 사용된 3D프린팅 기법과 맞물려 이들이 언제든 복제되고, 종국에는 일상적인 사물로 변모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개인의 존재를 수직적인 공간 안에서 풀어내는 정서연은 앞선 최지수의 작업과 형식적인 궤를 같이한다. 갖가지 폐목 조각과 의료 도구가 전시장과는 꽤나 이질적인 의료용 카트 위에 복잡하게 놓여 <Caretakers>를 이룬다. 오래된 사진이 폐목 조각 표면에 인화되고, 여기에 메스가 비스듬히 꽂히는 등 작업의 요소는 예민한 제스처로 한정된 공간을 채운다.


어린 시절 미국 보육원과 위탁 가정을 전전했던 정서연이 자신의 정체성, 즉 ‘뿌리’를 되짚는 과정은 작업 속 섬세한 연출과 상응한다. 의료용 카트는 작가가 재구성한 그의 시간이 층을 달리해 제시된, 어떠한 사건 현장으로도 읽힌다. 특히나 카트 각 층에 놓인 노란 번호판은 마치 흔적이나 증거를 표시하는 듯 관람객에게 이를 면밀히 바라보고 그가 지나온 시간을 역추적하도록 유도한다.

허구적 서사를 다소 정적인 표현으로 응축한 강민서의 회화 <천사의 눈물>도 주목할 만하다. 화면 속 확대된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다. 눈 안쪽에서는 손가락 하나가 비집고 나와 눈물을 향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는 작가가 상상한 천사의 눈이다. 응당 천사라면 자신의 눈물쯤은 그것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기 전에 눈물샘에 붙은 손가락으로 훔칠 수 있겠지. 팔을 접어 손을 눈에 대는 것보다 그편이 더 빠르기에.




전시전경




자칫 기이할 수 있는 상황은 작업의 제목을 읽는 순간 묘한 설득력을 지니며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연상했을 법한 흐름을 따라가게 한다. 어딘가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신화가 회화에 시간을 덧입히는 방식은 템페라 기법 특유의 갈라지는 표면으로 드러난다. 이는 동시에 눈에서는 실핏줄로, 피부에서는 잔주름으로도 보이는 만큼 강민서의 천사는 본인의 상상 속 신화에 기대고 있지만 실상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강민서가 그려낸 서사가 신화를 경유해 인체에 닿았다면 역으로 권영재는 신체에서 출발한 소리를 신화의 어법으로 구현한다.

그의 영상 <숨 쉬는 흙>에 깔린 선명한 숨소리는 관람객도 이에 맞춰 호흡하도록 제안한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며 바라본 화면에는 카메라를 등진 한 인물이 앉아 있다. 웅크린 듯 그의 머리는 보이지 않고 때때로 몸을 감싸 훑는 손의 움직임만이 강조된다. 권영재는 여러 신화와 종교에서 인간은 신이 흙에 불어넣은 숨으로 창조됨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신체에 대입해 스스로를 탐색하는 행위로 전환한다. 정제된 이미지와 사운드로 오히려 그 이면에 뒤엉킨 수많은 사념과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손이 몸과 맞닿을 때 나는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흙을 치대는 소리와 닮았다.

이번 전시에서 다수의 작가가 자신의 내밀한 서사에서 출발한 작업을 선보였다. 그만큼 그들의 작업이 그저 단순한 자화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도드라졌는데, 이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거쳤기에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이 확연히 늘어난 것 역시 지난해 전시와의 차별 지점이다. 알고리즘의 계산으로 확장된 감각이 앞으로 어떻게 정교화될지 지켜볼 만하다.


이렇듯 각자의 질문과 주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총 33명의 작품은 천만아트포영 홈페이지(cay.or.kr)를 통해 이어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술계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인 천만장학회의 연이은 프로젝트로 지금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 5월 31일자로 마무리된 본 행사는 이제 그 장을 다시 채울 새로운 작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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