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가리키거나 아니거나
전시장에는 서문이 없다. 기획자는 전시와 가장 직관적으로 연동되는 텍스트를 손쉽게 삭제했다. 으레 있어야 할 A4용지 대신 놓여있는 QR코드 이미지는 어떤 브이로그 영상으로 연결된다. 브이로그에 등장하는 ‘배우’는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해 보인다. 애초에 브이로그란 것이 관음적 시선에서 파생된 재현물이지만, 전시 서문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짧은 영상은 그 거짓됨을 더 명확히 한다. 숨니의 브이로그 속의 숨니와 진짜 숨니, 숨니의 진짜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 바로 그만큼의 틈에서의 불일치가 이 전시가 가시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백종관 <우언록> 2021
24개의 아크릴 프린트 이미지(A4), 3채널 비디오
(각 5, 6, 3분)
봉준호 감독은 줄줄이 감독상을 석권하면서, 외국 관람객이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 더 넓은 세계와 닿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자막은 사운드와 언어를 연결하는 하나의 지표이나 분명히 ‘장벽’이다. 서울대학교를 옥스퍼드대로 번역하고 짜파구리를 람동으로 번역할 순 있겠지만, 그 어감과 유머의 작동 방식은 번역될 수 없다. 사운드와 언어의 관계를 얼마나 ‘잘’ 일원화했는지로 좋은 번역을 논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싱어게인1’의 11호 가수가 부르는 <비상>의 클립에는 하단 가사가 삭제되어 있다. 실질적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11호 가수는 경연 내내 마이크를 쥔 손을 덜덜 떨 정도로 긴장했고 가사를 계속 절었다. 사운드와 캡션의 이격은 계속 벌어졌고 자막을 달게 되면 그 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가수는 눈물을 삼키며 대부분의 가사를 허밍으로 뭉개 버리고 그걸 보는 나와 같은 표정의 얼굴들이 거울처럼 교차편집 된다. 그제서야 노래는 완전해진다.
아마존 프라임이 제작한 토트넘팀의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에는 다인종 선수들이 엉켜 말싸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의 자막은, 각기 다른 악센트와 언어 능력으로 부지런히 싸우는 선수들의 일촉즉발의 상황을 깔끔하게 정제해낸다. 다큐멘터리는 빠르게 쏟아내는 선수들의 흥분을 일일이 문자로 옮겼으나, 손흥민의 서투른 분노는 [shouting]이라는 괄호로 처리했다. (그는 분명히 영어로 말했다. “What’s wrong with you? What's your respect on me? I respect you!”) 잔잔한 인종차별 논란 후에서야 아마존은 해당 자막을 언어화했다.
나미나 <호쿠(Hōkū)> 2021
싱글채널 비디오 19분 30초
<논캡션 인터뷰>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다. 이때 정치는 현실의 정치적 사건이 아닌, 현실을 가리키는 장치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역학이다. 기획자가 취사선택한 다큐멘터리라는 넓은 범주의 영상 작업들에는 인터뷰 영상과 무빙 이미지, 유튜브의 브이로그까지 포함되어 있다. 카메라의 흔들림과 흔들리는 풍경, 배우와 캐릭터, 진짜 나와 브이로그 속의 나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나, <논캡션 인터뷰>속의 작업들은 그 연결고리는 무화한다.
백종관의 작업이 이미지와 텍스트 자체의 겨룸을 통해 그 틈을 보여준다면, 박민수는 배우를 역할이 아닌 인터뷰어로 내세우며 틈을 벌려낸다. 정치는 이미지의 겨룸과 겹쳐짐 속에서 나미나의 작업 속 하와이의 ‘별’처럼 깜빡이며 등장한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노래를 인스타그램의 피드 위에서 건져 올릴 때 발견되는 시선의 문제야말로,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다시금 논해야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여주고자 하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 사이에서 작동한다. 그것은 즉 언제나 그 ‘사이’의 문제가 된다.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현실을 제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제시한다는 판타지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를 이해하고 그 틈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스스로 꺼내야 한다.
24개의 아크릴 프린트 이미지(A4), 3채널 비디오
(각 5, 6, 3분)
결국은 이미지가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는 순진한 믿음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그것이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아니면 캡션이 담아낼 수 없는 것들에야말로 그 진짜 언어가 있다. 허밍과 떨림, 숨소리와 햇빛, 망설임과 침묵, 기쁨과 인터뷰의 거절 속에.
* 나미나 <호쿠(Hōkū)> 2021 싱글채널 비디오 19분 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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