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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3, Jun 2024

형태와 색상의 유희

France
Ellsworth Kelly Shapes and Colors, 1949-2015

2024.5.4-9.9, 파리, 루이 비통 재단
● 김진 프랑스통신원 ● 이미지 Fondation Louis Vuitton 제공

'Four Greens, Upper Manhattan Bay' 1957 Collage on postcard 8.6×13cm © Ellsworth Kelly Foundation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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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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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서 색이란 무엇이며 형태는 어떤 역할을 갖는가? 70년에 이르는 작업 연대기 동안 특정 학파나 사조로부터 독립해 이에 대한 집요한 추적으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펼쳐나가며 20세기 회화와 조각에 대한 혁신적인 공헌을 한 아티스트가 있다. 미니멀리즘, 하드 엣지(hard edge), 컬러 필드(color field) 회화로 정의되는 미국 추상미술의 거장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다.

현재 프랑스 파리 루이 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에서는 미국 추상회화의 거장인 켈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회화, 조각은 물론 드로잉, 사진, 콜라주 작품 100점 이상을 모아 연대기적으로 결합해 전시하는 프랑스 최초의 대형 회고전이다. 작가의 경력 중 중요한 시기의 주요 작품들을 모으고 이들을 통해 형태와 색, 선 및 공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긴밀하게 추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미국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영국 런던 테이트(Tate),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과의 협업과 개인 소장품의 대여를 통해 파리에 모였다. 건물의 2개 층, 약 1,500㎡ 규모에 전시된 다양한 작품들은 켈리가 완성한 지극히 간결한 회화적 어휘가 어떻게 놀라운 활력과 풍부함으로 감상자에게 생경한 미적 경험을 제언하는지 보여준다.



<Spectrum VIII> 2014 Twelve joined panels,
 fabricated from aluminium honycomb composite 
construction with painted acrylic on canvas  
635×584.2cm © Ellsworth Kelly Foundation 
Photo: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켈리의 작품은 종종 하나의 색만 사용하거나, 엄격하게 적용한 듯 보이는 최소한의 직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모양과 색상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효과에 대한 켈리의 시각적 탐구의 결과로 미적 쾌락주의에 상응한다고 분석하는 의견도 있다. 극도의 단순함에서 찾을 수 있는 미적 경험의 최고치란 어떤 것일까?

켈리는 일반적인 사각형의 캔버스도 사용했지만 이보다는 다양한 도형의 형태로 만들어진 캔버스를 사용하거나 두 개 이상의 캔버스를 결합해 작품을 구성했다. 예를 들면 <3개 패널 회화(Painting in Three Panels)>(1956)와 ‘채텀(Chatham)’ 시리즈가 있다. 3개 패널 회화는 삼각형, 부채꼴, 사다리꼴 등 세 가지 다른 모양의 캔버스가 각각 불규칙한 거리를 두고 벽에 걸리는 삼부화이며 이들에는 서로 다른 색깔이 칠해져 있다. ‘채텀’ 시리즈는 두 개의 캔버스가 거꾸로 된 알파벳 L의 형태로 결합되어 있고 각 캔버스는 서로 다른 단색이다.

작품들은 비율과 색상 조합이 다양한데 대부분 그 앞에 서는 감상자의 키에 맞먹거나 2m 이상인 대형이다. 감상자들은 우선 색상이 뇌에 전하는 강렬한 파동을 전달받는다. 그리고 이 색상들이 왜 이 형태와 결합된 것이지 의문을 품고 따라가면서 켈리가 말하고자 한 그의 미학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곡선과 직선은 최소한으로 적용돼 형태를 이루고 작품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선택한 색으로 칠해져 구성되어 있다. 이들 사이에는 색깔과 형태 사이의 균형과 대비, 하모니와 긴장이 동시에 존재한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작품들은 사실 ‘형태와 색상의 유희’를 집요하게 탐구한 결론인 것이다.



<Colored Panels (Red Yellow Blue Green Violet)> 
2014 6 panels, 5 of which are presented at Fondation
 Louis Vuitton Red panel: 162.6×198.1×10.2cm; 
Yellow panel: 1,117.6×190.5×10.2cm;
Blue panel: 306.1×287×10.2cm; Green panel:
228.6×294.6×10.2cm; Violet panel: 243.8×365.8×10.2cm 
© Ellsworth Kelly Foundation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켈리가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집이 있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 방문 이후 제작한 최초의 모노크롬 작품 <녹색화(Tableau Vert)>(1952)가 있다. 1923년 미국 뉴버그에서 태어난 그는 1941년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고, 미국 정부가 재향 군인에게 제공하는 학자금 대출을 통해 1948년부터 1954년까지 파리로 이주해 생활했다. 프랑스에 머물면서 켈리는 작품을 추상적으로 단순화시키고, 각 색이 가진 성질과 두 가지 이상 색이 연속해 놓였을 때 생기는 충돌과 조화의 강력함을 회화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 야수파 화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마티스는 실재의 완벽한 재현을 버리고 형태를 단순화시켜 색상이 주는 강력함에 헌신하는 작품 경향을 가지고 있다. ‘색깔이란 무엇인가?’에 집착하게 된 켈리는 지베르니의 수련을 본 후 가로 99.7cm, 세로 74.3cm의 나무 패널에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녹색을 칠하고 자신의 품었던 미적 호기심에 대한 실험을 점점 더 발전시켜 나가기에 이른다. 그는 파리에서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와 무용수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과의 교류로 음악과 춤도 깊이 연구했는데, 우리는 켈리의 3개 패널 회화나 ‘채텀’ 시리즈 작품에서 색상들이 서로 충돌하고 호응하는 방식에 음악적인 리듬의 움직임이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Installation view of 
<Ellsworth Kelly. Shapes and Colors, 1949-2015> 
© Ellsworth Kelly Foundation Photo: Fondation Louis Vuitton 
/ Saywho / Antoine Ayka Lux



이 외에도 조각가 장 아르프(Jean Arp)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와 교우가 깊었는데 그들이 추구한 자연 형태의 단순화는 켈리의 작품 경향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지극히 미니멀한 도형처럼 보이지만 사실 경력 전반에 걸쳐 그는 자연과 식물을 보고 데생을 계속했으며 이 작품들 또한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일상의 모티프를 차용해 시각적 힘이 뛰어난 기하학적 추상화로 변형시키고 현실을 본질로 환원시킨 켈리의 작업 경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는 켈리의 대규모 바닥 그림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 부채꼴 모양의 <옐로우 커브(Yellow Curve)>(1990)가 맞춤 디자인된 공간에 전시된 것을 꼽을 수 있다. 60m2가 넘는 이 거대한 작품은 1990년 프랑크푸르트 포르티쿠스(Portikus) 전시를 위해 제작된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강력한 노란색으로 벽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설치되어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을 반사하고, 전시실 전체를 물들이며 공간의 볼륨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2차원성을 넘어 색이 공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힘에 대해 지각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사실 루이 비통 재단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해당 건물을 미처 완성하기도 전에 켈리에게 작품을 주문한 바 있다. 1953년 파리에서 탄생한 ‘스펙트럼(Spectrum)’ 시리즈의 무지개를 재해석한 무대 커튼과 건물 강당 내부 구조 구석구석에 흩어져 걸린 서로 다른 형태의 모노크롬 5개 회화 작품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켈리 사망 1년 전인 2014년에 완성되었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미술관의 영구소장품이기도 하다.



<Yellow Curve>
 1990 Acrylic on canvas on wood 
777×742cm Courtesy Glenstone Museum, 
Potomac, Maryland © Ellsworth Kelly Foundation
 Photo: Ron Amstutz



<스펙트럼 Ⅷ(Spectrum Ⅷ)>(2014)로 제목 지어진 이 무지개색 조합의 거대한 작품은 크기가 가로 584.2cm, 세로 635cm에 이르는데, 켈리는 이에 대해 “이 색상들은 내가 1940년대 초에 색상을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일생의 팔레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색상에 관한 켈리의 모든 신념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오른쪽과 왼쪽 모두 노란색으로 시작하며 안쪽으로 갈수록 무지갯빛으로 발전되는 색상 구성은 채도가 높고 맑은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생 색에 대해 탐구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볼 때 우리는 이 앞에서 그가 추적한 미적 신념에 대한 종착역에 이를 수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 미술계가 추상표현주의를 맹신했다면, 켈리의 작품은 동시대 작가인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리 크래스너(Lee Krasner), 심지어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폭발적인 회화적 폭발과는 거리가 멀고, 차분한 심리적 성찰을 가져오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나 바넷 뉴먼(Barnett Newman)과도 성질을 달리한다. 켈리는 창작 전 자신의 회화적 구성을 꼼꼼하게 준비하며 내면의 열정이 터지는 충동보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선호했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식물, 책 한 페이지에 드리워진 전봇대의 그림자, 창문틀을 통해 관찰되는 채색된 커튼의 조각,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의 둥근 천장, 심지어 작업장에서 보이는 언덕 등이 그의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는 요소였다. 미술학자 리처드 쉬프(Richard Shiff)는 이를 “시각적 경험의 단편”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모티프는 극도로 단편화되고 추상화되어 단지 몇 개의 선과 한두 가지 색상으로 축소되어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고 켈리만의 색상 조합으로 나타난다.



<Red Curve in Relief> 2009 Oil on canvas,
 two joined panels 195.8×149×7cm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Ellsworth Kelly
 Foundation Photo: Primae / Louis Bourjac



“마음을 끄고 눈으로만 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추상화된다.” 형태를 단순화한 후 켈리는 색상 카드를 이용해 컷아웃과 콜라주 기법으로 색상 부조의 눈에 띄는 대비를 선택하고 다른 형태의 추상화를 개발했다. 내용과 형식의 광학적 균형을 통해 회화의 전통적인 틀이 가하는 제약을 극복하고자 했고, 그가 즐겨 부르는 “물체 그림”은 형식적인 틀을 뛰어넘어 곡선, 원뿔, 원통, 삼각형, 원호 및 기타 색다른 기하학을 지닌 프리즘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표현했다. 색의 강도와 표면 크기 사이의 관계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그가 경험적으로 찾아 나간 정확한 선택이다.

평생 치열한 색과 형태의 탐구에 몰입했던 켈리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이번 전시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대담한 컬러리스트이자 미니멀리스트인 그가 그린 최초의 모노크롬인 ‘녹색화’가 있고, 그의 작품의 절정기인 ‘채텀’ 시리즈가 있으며, 마지막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루이 비통 재단의 커미션 작품까지 모두 있으니 말이다. 평생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적 신념을 머릿속에 두고 작품을 본다면 이제 형태와 색채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PA



<Blue Curves> (detail) 
2014 Painted aluminium 228.6×161.3×10.5cm
© Ellsworth Kelly Foundation Private collection



글쓴이 김진은 미술 칼럼니스트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의상학과 불어불문학을 복수전공 했으며, 2016년 프랑스로 유학해 팡테옹 소르본 파리 1대학(Université Paris 1 Panthéon-Sorbonne)에서 조형예술 전공 학사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조형예술과 현대창작 연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사와 예술이론 연구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2020년 개설한 유튜브 채널 ‘예술산책 Artwalk’을 통해 현대미술 관련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저서로 『그림 읽는 법』(202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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