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계 프랑스 작가인 카더 아티아는 지난 2018년 ‘광주비엔날레’의 구 국군 병원에서 장소 특정 역사적 배경을 반영했던 설치 작업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대부분의 전시 소개란처럼 이번 취리히 미술관(Kunsthaus Zürich)에서 열리는 전시도 작가의 작업 세계를 “상처, 치유, 재생 등을 주제로 지난 식민지 체제를 지나온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이민자와 혼합 문화의 정체성, 유럽의 아프리카 문화의 이해 방식을 작업에 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화의 재생산을 통한 치유를 모토로 한 카더 아티아의 미술세계는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나 ‘마니페스타(Manifesta)’ 같은 여러 비엔날레를 통해, 현대미술 실천을 공동체 형성, 정치 사회적 삶의 영역으로 넓혀간다는 의도로 생성된 커뮤니티 미술, 다큐멘테이션, 리서치, 아카이브 기반의 미술 또는 관계 미학 미술이라는 비엔날레 특유의 담론 속에서 논의되고, 전시되어왔다.
과연 그의 미술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을까라는 거대한
질문을 제치고, 반대로 카더 아티아의 미술이 이러한 사회 실천적 예술 담론을 떠나 다른 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최근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나 쿤스트하우스에서의 큰 개인전은 작가의 미술이 이러한 정치적 참여 미술의 틀을 조금은 비켜났을 때 미술관, 박물관이라는 문화적 컨텍스트에서 어떤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대두시키고 있다.
<L’Empreinte de l’Autre> 2016
Installation Papier mâché packagings of
manufactured goods, metal stands,
white wooden pedestals Exhibition view <Prix Marcel Duchamp>
Centre Pompidou, Paris, 2016 © the artist, Galerie Nagel Draxler,
Galerie Krinzinger, Lehmann Maupin, Galleria Continua,
Private Collection Photo: Vanni Bassetti,
OAK Studio © 2020 ProLitteris, Zürich
아마도 카더 아티아가 태어나고 자란, 그런 도시 외곽의 풍경이지 않을까? 대조적인 풍경을 보며 관람객은 달팽이가 왜 여기 살고 있을까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서로 다른, 어울리기 쉽지 않은 두 문화(아랍 아프리칸과 프렌치 유럽피언의 문화)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관한 이 전시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문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작업이다.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인 카더 아티아는 식민지 권력체제가 낳은 문제를 여전히 소화하지 못한 아프리카와 유럽의 관계성 속에 이민자가 유럽 안에서 겪고 있는 삶, 또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유럽과 아프리카 문화의 이해 방식을 개인적 경험의 반영, 학술적 리서치, 사회적 공동체의 논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카더 아티아의 전시가 열리는 공간은 사실 취리히 미술관의 핵심적 소장품인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이 시대별로 나뉘어 전시되었던,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이 연결된 공간이다.
커다란 열린 공간이 아닌 끊겨져 나눠진 방들의 특성상 여러 가지 다른 주제나 미디어를 나누어 연결하는 전시가 용이하다는 점을 작가는 이용했다. 원래 사진 작업으로 시작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비디오, 설치, 리서치, 아카이브 작업, 조각, 회화까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특정한 형식, 미학과 연관 없이 소재, 시간과 장소에 따라 유연하게 형성된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 아티아는 아카이브, 리서치 작업을 기반으로 한 설치, 콜라주를 통해 근대 건축과 식민지 역사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전통적 사막 지역의 거주 형태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도시 건설 방식의 유사점, 또 유럽식 건설 방식으로 도시화된 아프리카 대도시의 모습, 그 이상과 현실, 현대건축 미학을 기반으로 한 아프리카의 생활양식 등을 나열하는 스크랩들 옆에 세워진 <Indépendance Tchao>(2014)는 1970년대 세워진 세네갈 다카에 있는 아프리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호텔 앙데팡당(Indépendant)을 본따 만든 설치물로, 프랑스 식민 시절 경찰서에서 문자 기록을 담았던 수납장으로 만들어졌다 한다. 독립전쟁에 참여했던 저항세력들의 정보가 이곳에 저장되어 있다.
<Indépendance Tchao> 2014 Sculpture from metal
archive boxes, steel and wood, 333×180×150cm
Modern Architecture Genealogy 2014/2020 Collage
on cardboard (photographs, photocopies,
silkscreen and cardboard elements) 80×100cm
Installation view Kunsthaus Zürich 2020 © the artist and
Galerie Nagel Draxler Photo: Franca Candrian
© 2020 ProLitteris, Zürich
<The Body’s Legacies. The Postcolonial Body>(2018)은 2017년 파리 근교에 젊은 흑인 남성 테오도르 루하카를 경찰이 단순 검사의 목적으로 잡아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며 차별 대우를 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운동가, 후기 식민 문학 연구자, 철학가의 시각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작업이다. 요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으로 대두되는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과 어찌 보면 매우 닮아있는 이 사건에 대한 작업은 식민지화된 흑인의 몸을 주제로 스테레오 타입이 된 여러 형태의 흑인 문화 역사 속 모순과 아픔들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흑인의 삶이 강하게 녹아있는 가스펠(gaspel)이나 블루스(blues) 장르의 형성은 이들이 대규모 농장의 일꾼, 노예로 끌려올 당시 한편으로 일의 능률성을 높이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허락됐었던 노래 문화와 연관돼있다. 인터뷰 중 한 부분은 이러한 음악을 오늘날 대중음악으로 즐기는 문화의 잔인성을 고발하기도 하고, 기독교의 전파가 이들의 아픔을 달래기도 했지만, 또한 구조적 하위 주체의 역할을 당연시하는 제도적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지적한다.
아티아 미술의 강점은 여러 세기의 강도와 여러 층의 전달 방법이 한 전시 속에 녹아 복합적 레퍼런스 시스템을 만들어 간다는 데 있다. 각각 성격이 다른 미술작품을 병행, 대치시켜 생겨나는 일종의 네트워크는 리듬감 있는 전시 구조를 만들어 준다. 어떤 작업들은 매우 직설적, 은유적, 함축적이고 또 어떤 작업들은 복잡한 서사이거나, 애매모호한 암시이다. <La Mer Morte>(2015), ‘죽음의 바다’라는 함축적 제목의 이 작품은 아이, 어른, 여자, 남자 등이 입었던 파란색 계열의 중고 옷, 신발, 모자를 바다에 가라앉은 것처럼 바닥에 전시하면서 수많은 이민자들의 지중해에서의 죽음을 소름끼치게 암시한다. 또한 <The Scream>(2016)은 뭉크의 그림 절규와 아프리카 마스크의 형태상 동일함과 내용상 상이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The Object’s Interlacing> 2020
Installation with video (colour, sound)
and 22 objects (nylon 3D prints and wooden
copies of African artefacts) Dimensions variable Video:
1h 18min 37sec Istallation view Kunsthaus Zürich
2020 © the artist Photo: Franca Candrian
© 2020 ProLitteris, Zürich
반면 어떤 작업들은 형태와 내용과의 괴리감을 통해 다층적 해석의 가능성 자체를 소통과 이해의 어려움으로 시사한다. <Rochers Carrés>(2008)는 사진작업으로 해변에 놓인 커다란 회색 콘트리트 구조물 사이로 뒤돌아 앉아 먼 바다를 응시하는 아프리카 청소년들을 담고 있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웅장한 자연 질서와 혼란을 드라마틱하게 담은 얼음 바다라는 회화의 구도를 사진적으로 재구성한 것 같기도 하고, 베통 브뤼(béton brut)의 현대 건축 미학을 담은 것 같은 이 작품은 사실 밥엘 우드(Bab El Oued)라는 알제리 해변에 정부가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불법 이민자를 통제하고자 쌓아 올린 거대한 벽의 일부분을 보여준다. 이 벽은 아이러니하게도 청소년들이 어울려 소통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 사진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건축이미지나 낭만주의 회화 구조를 우리가 모르는 현실 즉 이민자 장벽과 대비시킴으로 재현의 빗나감을 주제화하고 있다.
2012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선보였던 <The Repair form Occident to Extra-Occidental Cultures>으로부터 시작된 철 기둥 위에 설치된 대형 나무 조각 <Culture, Another Nature repaired>(2014-2020)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큰 부상을 입어 회복 불가의 상처를 입은 얼굴들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 아카이브를 조사해 당시 부상당한 사람들의 사진을 찾아내어, 이것을 아프리카 세네갈 전통 목수들을 찾아가 각각의 기술로 조각품으로 제작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진과 불일치하거나 기술적 결함이 드러나도 아티아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제작을 의뢰했다고 한다. 마치 표현주의 조각 같기도 하고 아프리카 민속 공예품과도 상통되어 보이는 이 조각품들은 전쟁의 잔인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상처를 불완전하다고 보는 유럽의 시각에 대한 반성이고, 모더니즘과 아프리카 미술이 만난 순간에 대한 기억이며, 기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La Mer Morte> 2015 Installation with blue
second-hand clothe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Kunsthaus Zürich 2020 © the artist,
Galerie Nagel Draxler and Regen
Projects Photo: Franca Candrian
© 2020 ProLitteris, Zürich
글쓴이 김유진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취리히 대학(University of Zürich) 미술사학과에서 「Remake in the tension between the global and local art scene」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스위스 한 재단에서 예술 소장품 관리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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