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그리스 키프로스 섬 리마솔에서 태어난 호주 국적의 스텔락은 대표적인 포스트 휴먼 예술가로 평가되고 있다. 어릴 적 그의 흥미를 자극한 것은 세상을 지각하고 감각하는 기술과 기계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몸이 재구축(re-architecture)되는 ‘진화’라는 키워드다. 그는 기술을 이용한 몸과 기계의 융합으로 새롭게 진화될 인간의 몸을 상상하고 있다. 단순한 망원경이나 현미경의 발명 역시 멀리 떨어져 있거나 결코 볼 수 없었던 작은 세상과의 만남이 가능해지는,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형태가 변화하고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그의 예술 활동 초기 대중들에게 선보이며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피부를 바늘로 꿰어 몸을 띄우기(Body Suspensions with Insentions into The Skin)>는 진화의 대상이 되는 몸에 대한 충격의 이미지였다.
20개 가량의 갈고리로 피부를 뚫어 몸을 띄우는 퍼포먼스는 정육점에서 도살당한 고기를 매단 것처럼 보였고 신체(그는 신체를 ‘meat’로 표현하곤 했다)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모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영감의 작품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제3의 손(The Third Hand)>이라는 기계손을 개발하면서 기계를 신체의 대안으로 삼고 부착시킴으로써 그만의 작품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체와 기계의 상호작용을 통한 퍼포먼스, 좀 더 발전시켜 인터넷과의 인터렉션, 또는 새로운 기계장치들을 고안하여 아바타(Avatar), 모바타(Movatar)의 개념을 사용하거나 신체와 기계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통해 확장된 신체의 모습들을 보여 왔다.
<Body On Robot Arm> View of <DeMonstrable>
at Lawrence Wilson Gallery, Perth Photographer: Jeremy Tweddle Stelarc
<제3의 손>이나 <확장된 팔(Extended Arm)>, <팔위의 귀(Ear on Arm)>, <양면의 팔(Ambidextrous Arm)>의 프로젝트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팔의 형태들을 제안한다. 1980년 요코하마에서 완성된 <제3의 손>은 왼팔에 부착된, 말 그대로 제3의 기계적인 팔로 당시 사이보그형 인간의 도상을 보여주었다. 복부와 다리의 근육을 감지하는 EMG(Electromyo-graphy, 근전도 검사기록장치)의 신호에 의해 움직이는 제3의 손은 움직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팔목을 보여주고 몸의 움직임에 의해 통제되는 인간과 기계가 공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82년 도쿄 마키 갤러리(Maki Gallery)에서는 이를 이용해 로봇 팔을 포함한 세 개의 손이 동시에 ‘EVOLUTION’이라는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를 실행했고1984년에는 팔 세 개를 이용해 공을 동시에 던져 보이기도 했다. <확장된 팔>과 <양면의 팔>은 <제3의 손>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보이며 일종의 사이버틱한 의수의 모습이다.
새롭게 고안된 팔들은 자유자제의 활동반경을 가지고 있고 팔의 앞면 뒷면 구분 없이 작동하며 심지어는 손가락이 반으로 갈라져 무언가를 짚을 수도 있게 구상되었다. 퍼포먼스에서의 장착된 기계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발전하였고, 점차 수정될 인간의 몸에 부착될 가능성이 높은 형태에 근접해지고 사이보그의 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팔의 확장이라 불러질 수 있는 그만의 예술과 과학 사이에서의 시각적 퍼포먼스는 비디오나 이미지적인 상상의 형태 혹은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현실의 모습으로 관람객에게 다가가며 스펙터클의 충격적 대상이나 현실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주는 일종의 유비로 보여 지고 있다.
<Ear on Arm Suspension> Scott Livesey Galleries Photographer: Polixeni Papapetrou Stelarc
그는 몸을 진화할 대상이라는 범주 아래에서 단순한 몸의 변형이 아닌 외부와의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물로도 사용한다. 2000년에 고안된 <팔 위의 귀>는 생명공학이나 기계적인 의미로의 이식된 귀뿐만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몸이 귀를 매개로 해 외부가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대리물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팔위에 이식된 귀에는 사운드 장치가 이식될 예정이며 이를 무선으로 연결하면 외부의 사람들이 귀에 접속하여 스텔락의 <팔 위의 귀>가 듣고 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다. 몸은 사물화되어 타자와 자아를 연결하여 공유되는 장소로 재구성된다. 이는 <프렉탈 몸(Fractal Flesh)>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로 자신의 몸 반쪽을 통제 당하게 하는 인터랙티브 퍼포먼스로 파리와 헬싱키, 암스테르담에 있는 관람객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전기 자극으로 그의 근육을 움직여 몸의 움직임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 의해서만 조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방식에 스텔락은 “사이보그가 된 신체는 정보와 함께 상징적/기생적 관계로 들어간다. 신체는 연장된 가상의 신경체계 속에서 반응하는 노드(node)가 된다. 신체는 정보의 홍수에 의해 소비되고 또 소비되면서 그 탐색 인공기관(Search Prosthetics)에 의해 조종되고 움직이면서 연장된, 상징적 사이보그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2)고 설명했다. 몸의 사용에 대한 생각은 단순한 자아의 그릇을 넘어 일종의 데이터가 되고 네트워크 안에서 소비되는 또 다른 사이트가 된다.
<Ear on Arm Casts> Scott Livesey Galleries, Melbourne Photographer: John Brash Stelarc
이 밖에도 <Exo Skeleton> 퍼포먼스에서는 스텔락에 의해 조종되는 거대한 거미 로봇을 볼 수 있는데, 신체가 거미 기계로 확장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몸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거대한 기계로서의 몸이 묘사되고 있으며 팔이나 다리의 동작들 혹은 인간의 인지적 감각들이 기계의 힘을 빌어 세상과 확장된 방식의 새로운 관계를 구현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과 몸의 상호작용 잠재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 기계는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나 비주얼적인 그럴싸함이 아니다. “‘기술의 사용’에 따라 인간은 변화되어 오고 있다. 쉽게 말해 인공심장의 사용에 의해 달라진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심장 없이도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살아갈 수 있다. 아마 근저에는 당신의 심장이나 뇌가 움직이지 않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기술들은 무엇이 사람인지. 사람의 몸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의미와 형상들을 바꿔 버릴 것이다”라는 스텔락의 말처럼 기계의 발전과 기술의 발견은 인간의 생활이 문화적으로, 물리적으로, 인식적으로 재정의됨을 말해주고 있다. 미래에는 누군가에게 반했을지라도 심장이 쿵쾅거린다는 말을 더는 사용 안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몸의 기능, 환경이 수정될 가능성을 드러내고 변화시키는 패러다임의 변모를 암시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새로운 인간을 이해하고 기술과 기계를 인간 신체의 중요한 파트너로 상정하는 기술현상학(techno-phenomenology)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각주]
1) 옌스 에더(Jens Eder), 「유튜브에서의 포스트 휴먼 양상들」, 『인간과 포스트 휴머니즘』,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3, p.207-208 참조.
2) Stelarc, “ParaSite: Ever for Invaded and Inviluntary Body”:
Steve Dixon, Digital Performance, A History of New Media in Theater, Dance, Performance Art, and Installation MIT, 2007 p.314;
전혜숙, 「스텔락의 ‘사이보그 퍼포먼스’를 통해 본 미술 속의 새로운 신체개념」, 『기초조형학연구』, 2010, p.249에서 재인용
스텔락
스텔락은 1946년 키프로스 남부 항만도시 리마솔(Limassol)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행위예술가다. 1972년 스텔락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개명했으며, 인간 신체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는 것에 집중한다. 1976년과 1988년 사이에 그는 피부로 바늘을 꿰는 신체 퍼포먼스를 25차례나 진행하며 미술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모나시 대학교(Monash University)와 멜번 대학교(Melbourne University)에서 수학했고, 전 세계를 돌며 전시,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현재 영국 웨스트런던에 있는 브루넬 대학교(Brunel University)에 헤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