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은 일련의 ‘아카이빙’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먼저 직접 사진을 찍어 이미지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개인적으로 수집한 사진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굳이 인터넷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IMG 드라이브’ 시리즈에서 알 수 있듯이 사진에 좌표화되어 찍힌 위치도 ‘장소성’으로 치환해 자신이 자료를 수집한 곳까지도 전부 아카이브 하는 것과 같다고 홍성준은 말한다. 앞으로 작품의 데이터화를 위하여 경도, 위도와 같은 장소성까지 제목으로 기록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나무, 동물 등과 같은 사물은 하나의 ‘조형’이다. 그가 수집한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반적인 사진 느낌에 맞춰서 확대하거나 축소하며 제3의 시선으로 사물을 재해석해 내고, 이를 회화 속에 한 부분으로서만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작가는 극사실적으로 이 조형들을 재현해낸다. 한 마디로 회화로서 사진의 사실성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2231>, <2844>, <2942>
2019 캔버스에 유채와 아크릴릭 각 41×32cm
그의 근작들을 살펴보면 모두 매끈한 표면에 마치 마블 같이 표현된 백그라운드가 눈에
띈다. 상대적으로 풀 스케일로 잡아낸 인물이나 동물, 조형들
덕에 캔버스에 빈 곳이 많은 듯 보이지만, 작가는 “여백은 결코 여백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난 이 마블 백그라운드는 조형이 결코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라운드로서, 하늘로서, 자연이고 또 자연스러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 매끄러운 백그라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작가는 큰 통에 기름과 물감을 섞고, 캔버스를 담갔다 빼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를 자신만의 독특한 테크닉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재료학’이란 강의를 진행하며 각 재료의 특성과 이를 극대화하는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추상의 힘에 기대어 백그라운드를 만든다면, 그 안에 포함되는 조형들은 마치 사진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이 정교하다. 홍성준은
디테일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어떤
대상이나 이미지든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 즉 목적성을 가진 부분은 그러한 점들이 드러날 수 있게 선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면 내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시각을
흡수하는 그런 집중력은 바로 세세한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다.
<IMG Drive no.1-9> 2019
캔버스에 유채와 아크릴릭 각 145.5×112.1cm
<WHITE>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53×45cm
라흰갤러리에서 열린 최근 개인전 <Code Against Frame>에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농축돼 있다. 홍성준은 회화를 하나의 프레임, 즉 틀이라고 보았다. 그 틀에 도전하는 존재인 ‘코드’로 그가 상정한 것이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가 가지는 물성과 물성 자체의 이미지, 이 두 가지를 대조해서 보여주는 전시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시장 1층 중앙 벽면을 꽉 채운 ‘IMG 드라이브’ 시리즈가 압도적으로 눈에 띈다. 2층 난관에 위치한 망원경으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 망원경으로 보는 시선이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라고 한다. 또 전시에 함께 선보인 ‘행잉’ 시리즈 역시 물감의 표피, 껍데기를 벗겨낸 작업들로, 시각적 잔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YELLOW>, <VIOLET>, <BLUE>와 같은 시리즈 작업들 역시 흥미롭다. 아크릴릭과 에어브러쉬로 작업한 이들은 작가가 마블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부어 놓은 물감 통에 실제로 생긴 무늬를 작업화한 것이다. 퍼져나가는 에어브러쉬 특성상 더욱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작가는 이 역시 정교한 추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전시는 회화란 무엇인지, 어떻게 이를 실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홍성준의 사유를 담았고, 그의 작업적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하나의 집약체가 되었다.
<BLACK>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53×45cm
홍성준은 그의 작업을 통해 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무엇을 보는가, 또 당신은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반복적으로 되물으며, 디지털
이미지 시대에서 회화가 살아남을 방편을 생각해나간다. 범람하는 이미지 홍수 속에서 과연 고유의 이미지란
무엇인가. 아니, 이미지란 애초에 무엇인지를 질문하며 이를
회화에 녹여낸다. 이 질문은 작가 자신에게 하면서 동시에 이를 관람하는 모두에게 던지는 심오한 숙제인
셈이다. 그림쟁이로서 그가 앞으로 걸어 나갈 길을 탐구하는 작가는 그렇게 현재를, 세상을 반추한다.
홍성준
작가 홍성준은 2012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화랑대 기차역에서 그룹전 <네가지난여름에>를 비롯해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울미술관, 에스팩토리 등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주요 개인전으로는 2014년 파인 아트 스페이스에서 연 <Life Between Lines>전과 2018년 63아트뮤지엄에서 선보인 <IMG Drive>전이 있다. 또한 2015년부터 현재까지 미술 재료학에 관한 특강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