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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4, Jul 2024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
Anna Maria Maiolino

순환과 엔트로피의 여정

● 박지형 큐레이터 ● 이미지 작가, Hauser & Wirth 제공

'Entrevidas (Between Lives) from Fotopoemação (Photopoemaction) series' 1981 Digital Print Edition of 5 + 2 AP 3 parts each 122×78cm © Anna Maria Maiolino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Stefan Altenburger Photography Zü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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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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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외곽 홀로 서 있는 창고 안에 10t에 가까운 붉은 흙더미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빼곡히 쌓여 있다. 구불구불 말리거나 긴 선형으로 늘어진 진흙 덩이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천천히 마르고 석화되어 언젠가 다시 땅으로 돌아갈 존재들이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60th Venice Biennale)’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을 받은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Anna Maria Maiolino)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브라질 국적의 여성 작가인 그는 생성과 소멸, 음과 양, 구축과 해체의 개념을 횡단하는 폭넓은 매체적, 형식적 실험을 지속하며 브라질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대변한다.

작가는 1942년 에콰도르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와 가족은 당시 계속되는 전쟁을 피해 라틴 아메리카의 땅 곳곳으로 이주하며 삶을 이어나갔는데, 이러한 특수한 성장 배경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드는 혼성적 공간에서 발화하는 언어, 전통, 관습, 한계에 관한 지각에 선명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의 작업세계는 브라질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게 된다.


특히 그가 참여했던 네오콘크리티즘(Neo-Concretism)의 경향은 정치적, 문화적, 산업적 격변기인 1960년대 태동했던 콘크리트 아트(Concrete Art)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엘리오 오이티시카(Helio Oiticica), 리지아 파페(Lygia Pape), 리지아 클락(Lygia Clark)과 같은 당대 작가들은 추상을 산업과 기술, 예술에 적용하고자 했던 콘크리트 아트의 태도를 인지하면서도 현실을 향한 주체적인 목소리를 작업에 적극 반영하는 것에 몰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천이 예술과 사회 사이를 오가는 공감각적인 면모를 견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응답하듯 폭넓은 양식적 시도를 보여주었다.



<in-locu, from Terra Modelada (Modeled Earth) series> 
1998/2018 Room with unfired clay installation Installation view of 
<Anna Maria Maiolino. ERRÂNCIA POÉTICA (POETIC WANDERINGS)>
 2018 Hauser & Wirth New York 22nd Street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nna Maria Maiolino Photo: Timothy Doyon



전후 현대미술의 중심지와는 먼 환경에서 시작된 마이올리노의 작업은 브라질 정부의 압력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공유하는 행동가적인 면모를 토대로 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정치 투쟁을 향한 실질적 전략으로 나아가기보다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서부터 발현된 상징적인 실천들로 치환되어 간다. 그는 지리적 이동으로부터 기인한 타자성과 여성의 정체성, 일상 속의 제의식, 우주 시스템 등의 주제에 몰두해 왔으며, 여기에는 언제나 몸의 개입이 전제된다. 특히 그는 인간이 설정한 규칙과 기준을 벗어나는 영역의 상태들, 언어 이전의 가장 원초적인 육체의 움직임과 성질에 주목했다. 그의 초기 작업은 신체와 직결된 생리적인 순환을 자주 언급했다.


그에게 가족과 함께 음식을 먹고, 이를 소화하고, 배출해 내는 일련의 기초적인 삶의 패턴은 물질의 양태를 끊임없이 변환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진 <In-Out>(1973/1974)이나 판화 <Glu Glu Glu>(1967)와 같은 작품은 원시적인 충동과 욕망을 향한 작가의 호기심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그가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은 곧 작업을 지탱하는 개념과 일맥상통하므로, 마이올리노의 작업 속에서 각 질료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살피는 것은 꽤 중요하다. 작업에는 굽지 않은 흙, 나무, 실, 잉크, 종이 등 단순한 매체가 활용되는데, 각 매체가 품은 고유의 성질이 작품에서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나무의 결을 긁어내는 일부터 손으로 흙을 주무르고, 연약한 재료를 찢거나 겹치고, 바느질하고, 길을 걷는 등의 사소한 노동의 힘이 동원된다.



<High Tension, from Fotopoemação
(Photopoemaction) series> 
1976/2010 Black and white analog photograph 
Edition of 5 + 2 AP 47×34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nna Maria Maiolino



그중에서도 종이는 단연 그에게 필연적이고도 핵심적인 재료다. 이 연약하고도 질긴 지지체는 손이 가하는 작은 힘들을 축적하며 상징적인 함의를 띤 대상으로 변모한다. ‘Mental Maps’(1972-1999) 연작은 1970년대 시작된 프로젝트로 개인과 사회의 생물학적, 지리학적 네트워크를 함축적인 기호로 그려낸 드로잉이다. 종이를 하나의 은유적인 장으로 보고 그 표면을 비가시적인 정신의 영역으로 상정할 때, 비정형의 흔적으로 구성된 추상 이미지는 발화되지 않은 정동의 징후를 담은 정신의 지도가 된다. 또 다른 대표작인 ‘Drawing Object’ 역시 종이를 사용한 작업이지만, 형식 면에서 조각적인 요소를 보다 강하게 내재하고 있다.


구멍 나고, 접히고, 베어진 종이를 촘촘히 포개어 완성한 작품은 겹친 층위 틈으로 빛과 그림자의 낙차를 담아내는 부조의 형태를 띠게 된다. 아래에 숨겨져 있던 종이의 일부는 작은 구멍 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내며 추상적 형태의 구심점이 되고, 역으로 가장 바깥에 놓여 있는 테두리는 여기 너머의 차원을 보여주는 창으로써 뒤로 밀려나기도 한다. 경계를 흔드는 이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조형은 그가 삶 전체를 하나의 반복되는 사이클(cycle)로 보는 태도를 방증한다.



<Untitled, from Peculiaridades (Peculiarities) series> 
2018 Acrylic ink on paper 101×72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nna Maria Maiolino
Photo: Everton Ballardin



한편 그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형태 중 하나는 시멘트, 찰흙, 청동 등을 기반으로 증식하는 유선형의 덩어리다. 작품을 이루는 요소는 머리나 꼬리의 표식도 없이 뭉쳐진 세포의 일부를 떼어낸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조각들은 길게 매달리거나 벽에 달라붙어 군락을 이룬 형태로 놓이는데,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가마에서 굽지 않은 부드러운 점토를 성형한 설치 작업이다. 이 흔한 재료는 의도적인 작은 비틀기를 통해 이내 기이하고 낯선 존재가 되어 관람객에게 성큼 다가선다. 10여 년 전 카셀(Kassel) ‘도쿠멘타(documenta)’에서 그가 선보였던 <Here & There>(2012)는 정원사가 쓰던 작은 오두막의 생활 공간 곳곳을 일시적으로 여러 질감과 색과 크기를 가진 흙덩이들로 채우는 작업이었다.


이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식탁과 서랍장, 침대와 의자는 불현듯 기묘한 풍경으로 변모하며 일상의 감각에 변주를 시도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있는 <To Infinite> 역시 인공적인 장소를 점유한다. 그는 작품의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무한히 겹치고 안팎이 뒤섞인 흙더미를 생산했다. 바닥과 선반에 가득한 가지각색의 덩어리들은 인간을 대변하기도, 은하계의 행성을 뜻하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무기물을 생각하게도 한다. 반복된 수행의 결과는 제의적 성격을 담을 뿐만 아니라 팽창하는 엔트로피(entropy)의 힘을 내재하며, 더 나아가 인류의 오랜 역사와 우주의 관계망을 향한 경외와 상상력을 보여준다.



<É o que sobra (What is Left Over), from Fotopoemação
(Photopoemaction) series> 
1974 Black and white analog photograph Edition of 
5 58.8×148cm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nna Maria Maiolino



50여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수립된 그의 문법은 작가 스스로가 경험한 미시 상태를 넘어 거시적인 서사로 점차 확장되어 왔다. 마이올리노는 비가역적인 현존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 앞에서 지치지 않는 행위의 중첩, 소박한 주변의 것들과의 에너지의 교환으로 화답한다. 가령 도로 바닥에 흩어져 놓인 수십 개의 날달걀 사이를 맨발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퍼포먼스 작업 <Between Lives>(1981)는 보호막 없이 외부와 접촉하는 몸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형화된 의미나 기능으로부터 이탈한 생경한 사물의 모습을 포착해 냈다.


이처럼 그가 짓는 생태계는 지독하게 촉각적이고도 연약한 개체들의 조합에서 출발한다. 군집을 이룬 유기적 존재들은 함께 끊임없이 타자와 연결되고 접속하기를 자처한다. 이 마주침과 순환은 맹목적으로 하나의 완성된 장면을 꿈꾸지 않는다. 도리어 이들은 무수히 다양한 위치를 오가는 생명체들의 복잡다단한 리듬을 감각하고자 한다. 그리고 결국 이 리듬은 현실에 발을 딛고 선 나의 실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진동이자, 경계 밖으로 밀려난 객체들과의 또 있을 만남과 공존을 상상하는 미완의 풍경으로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 PA



<João & Maria (John & Mary)> 2009/2015
 Video; colour, sound 4'08''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Anna Maria Maiolino



작가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Anna Maria Maiolino)는 194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1960년 가족과 함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 그는 Escola Nacional de Belas Artes에서 회화와 목판화를 전공했다. 브라질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 작가는 예술로써 인간이 마주하는 한계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드로잉, 판화, 시, 영화, 퍼포먼스,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분야와 매체를 넘나들어 작업하며 주체성과 자아성찰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 로마 국립현대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 e Contemporanea), 피나코테카 미술관(Pinacoteca di Brera),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등 전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상파울루에 거주하며 작업 중인 그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60th Venice Biennale)’에서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Portrait of Anna Maria Maiolino
Photo: Everton Ballar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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