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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3, Jun 2024

정영선
Jung Youngsun

한국 자연주의 조경가

● 조경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 이미지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영선_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전경 202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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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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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초여름 ‘정영선’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4월 5일부터 9월 22일까지 열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가 4월 17일 개봉해 극장가에서 순항하고 있다. 이외에 대중매체나 교육 방송 채널에서도 인터뷰 영상과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여러 매체를 통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잘 살피고 지키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호소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연령대를 넘어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정영선의 삶이 시대정신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지킴이로서 우리 것을 존중하는 그의 태도는 공감을 넘어 감동을 준다. 여기서는 정영선의 글을 중심으로 지적인 탐구가 어떻게 작업에 반영되었는지 살피고, 나아가 그가 우리의 고유한 조경을 구현하는 방법을 어떻게 도출하였는지 그 탐험의 여정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공중 정원 전경 
2018 사진: 유청오



한국 경관의 인문학적 탐구

정영선 조경의 특징 중 하나는 한국적 정서에 기반한 경관을 구현하는 것이다. 호암미술관 희원(1997), 국립중앙박물관(2005), 제주 오설록(2012, 2019, 2023) 등 여러 프로젝트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정영선은 학창 시절부터 끊임없이 한국의 미를 공부해 왔고 이를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체화했다. 그는 한국의 경관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1) 우리 시조에 나타난 경관 유형을 분석했고, 퇴계 이황,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 작품을 중심을 통해 이들의 경관 특성을 파악했다.


산과 강이 서로 안고 도는 곳에 터를 잡는 산수간(山水間), 경관 경험이 시공간적으로 변화하면서 전개하는 음악성, 구수하며 담박한 생활 태도에서 배어나는 소박미는 그가 파악한 한국 경관의 특징이었다. 우리 선조의 문학 전통에서 경관 원형을 찾는 노력은 개인적인 성향에서도 기인한다. 대학 시절 서울대학교 주관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됐던 정영선은 지금도 좋아하는 우리 시들을 모아서 간직하고 낭송한다. 이러한 그의 인문학적 탐구 정신은 이후 조경 설계의 철학과 원칙으로 작용한다.



선유도공원 시간의 정원의 여름
 2019 사진: 이동협



정영선의 「비원별곡」은 창덕궁 후원의 조성 과정과 작정 원리를 설명하는 글이다.2) 이전의 발견한 한국 경관의 구성 원리가 심화해 발전된다. 첫째는 땅의 생김새를 잘 고르고 적절히 이용하는 유연한 터 잡기를 설명한다. “있는 경치를 그대로 활용하게 탁월한 눈으로 터를 읽고 정자를 지으면 보이는 숲과 계곡, 바위와 돌이 정원이 되는 것이다.” 경치를 정원으로 끌어오는 차경(借景)의 원리도 작용한다. 주변 숲과 계곡의 자연에 최소한의 개입으로 정원으로 연결하는 것은 조영 원리의 핵심이다.


이는 김원룡이 언급한 한국정원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조선 정원의 진면목은 서울 북악 산록에 있는 칠궁 후원에 있다. 여기 후원은 정원이 아니라 산기슭 일부이다. 산기슭 일부에 담을 돌려서 칠궁 안으로 연결시켰을 뿐이다.”3) 둘째로 공간 연속적 변화를 들고 있는데 앞서 파악한 ‘음악성’이라는 특성과 조응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국면을 읽어내고 그 아름다운 자연과 나와 관련을 맺게 하면서 두루마리 화첩의 12 경치를 한 첩씩 보듯 이 정원의 경치는 그렇게 펼쳐져 나간다.”

다음은 정원의 상징적 측면을 이야기한다. “후원은 은유와 관념의 형상화된 한 편의 드라마이다.” 정원의 회화적 풍경에도 여러 단서가 있어서 시적 풍경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자연히 체험의 깊이는 배가된다. 대학원 시절 창덕궁 후원 실습으로 시작한 한국정원 공부는 그만의 설계법을 구축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제주 오설록 이니스프리 전경 
2013 사진: 김용관



우리 땅 설계법

호암미술관 희원에 관한 작정기(作庭記) 성격의 『하늘과 맞닿은 아름다움 희원』(삼성문화재단, 2011)에서는 다섯 가지 단계 설계법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터 잡기’로서 “터를 골라 정원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주어진 터를 해석하며 훼손되고 변질된 경관이나마 한국적 경관으로 되돌리고, 여기에 운치와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둘째는 ‘차경’으로서 “멀고 가까운 경치를 빌려 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담 안과 밖의 경치, 나아가 삼라만상의 자연 현상을 정원의 구성과 감상의 핵으로 삼는다.” 셋째는 ‘점진적인 변화, 보아나가기’로서 “가능한 한 깊은 주름으로 지형으로 만들어 점진적으로 경관들로 보아나가게 한다.” 넷째는 ‘조산착지(造山着地)’로서 가능한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고자 조산으로 하되 (중략) 조산, 즉 지형은 조망과 보아나감을 고려하여 조형한다.” 다섯째로 ‘식물과 석물’로서 “들과 산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심어, 마치 저절로 자라 군락을 이룬 듯하게 한다.


이른 봄부터 이곳저곳에서 꽃들이 두런두런 피어나는 풍경을 맛보게 한다.” 이러한 조영 원리는 희원 공간 구성에 충실히 구현되었다. 원래 단조로운 접근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 측면으로 진입하는 여정을 만들어 미술관으로 천천히 진입하게 동선을 연출한 것이다. 미술관을 한눈에 조망되지 않게 조산과 석축을 쌓아 서서히 드러나게 하고 숲으로 건축을 보완하였다. 정원 길 숲속에 벅수, 동자석, 석등, 석탑, 불상은 무심히 배치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획득하게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마당 마스터플랜
 2024 이미지 제공: 서안조경



원다르마센터 가을 전경
 2022 이미지 제공: 원다르마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의 일환으로 전시마당 정원과 종친부마당 정원이 조성됐다. 전시마당 정원 사례를 들어보면 여기에도 다섯 가지 설계법이 동원됐다. 음지인 조건의 마당을 수용하여 자리 잡고, 주변 인왕산 풍경을 끌어와서, 작은 언덕을 만들고 자연석을 배치했다. 정원에 자연스러운 동선을 내어 인근 숲에서 볼 수 있는 야생화와 풀들을 심었다.


‘산단풍, 물철쭉, 함박꽃나무, 미선나무, 가침박달, 노랑조팝나무, 만병초, 꼬리진달래, 노루귀, 할미꽃, 미나리아재비, 붓꽃, 용담, 둥굴레, 사계바람꽃, 꼬리풀, 청나래고사리, 이끼’는 우리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식물이다. 향후 조각작품이 배치될 것도 고려해 공간에 여백을 주고 있다. 돌과 이끼와 식물의 소재는 오래되고 익숙한 소재들이지만 그가 정원에 이를 구성하는 방식은 현대미술처럼 새롭다.



월수공원 해동경기원 전경 2023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진 웨이치(마카오 과학기술대학교)



소박미의 자연주의 조경

정영선은 일관되게 한국적 조경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서구에서 유행하는 자연주의 정원(Naturalistic Garden)보다 훨씬 앞서는 그의 조경은 생태적 관계를 고려하며 소박미를 표현하는 한국 자연주의 정원을 선취한다. 흙, 돌, 식물의 어우러진 숲 풍경을 잘 살피고 이를 재현하는 것이 그의 조경법이며, 자연에서 가져온 석물을 배치해 자연에 가깝게 구축하는 것은 단지 모사가 아닌 서식 환경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오랜 내공으로 터득된 감각을 활용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험하는 정영선. 담장을 넘어 주변의 자연과 관계 맺기를 하듯, 계속해서 우리 사회와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그에게 태도는 곧 형식이 된다. 그리고 그 태도는 인간이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과잉 욕망과 자본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도시 환경 속 자연주의 조경에 나타난 정영선의 소박미가 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점차 새로운 층위를 더해가는 정영선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PA




호암미술관 희원 전경 
2002 사진: 양해남



[각주]
1) 정영선, 「한국인의 경관관에 관한 고찰: 주로 이조시대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5
2)  정영선, 「비원별곡」, 『LOCUS 2 조경과 비평』, 조경문화, 2000, pp. 214-223
3) 김원룡, 『한국미의 탐구』, 열화당, 1978, p. 28



작가 정영선
사진: 민희기



작가 정영선은 1941년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과수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주부생활』 기자로 활동하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1호 대학원생이 된다. 이후 청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적 연구에 매진했으며, 여성 최초 국토개발기술사로서 조경 설계일을 본격적으로 수행해나갔다. 1987년에는 서안(주)을 창립해 조경설계 회사 대표로 지금까지 공공 및 민간의 크고 작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9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정영선이 반세기 동안 펼쳐온 조경 활동을 망라하며 엄선한 60여 개의 작업과 서울관에 특화된 2개의 신작 정원을 통해 그의 삶과 철학,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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