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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3, Jun 2024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
Abraham Cruzvillegas

Precarity: In Action

● 임서진 독립큐레이터 ● 이미지 작가, kurimanzutto 제공

'Autorretrato ciego ovolactovegetariano pero transgénico' 2010 Blue and yellow acrylic paint on newspaper clippings, cardboard, photographs, drawings, postcards, envelopes, tickets, vouchers, letters, drawings, posters, flyers, cards, recipes, napkins and steel pins on wall Variable dimensions (installation of 166 piec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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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진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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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살핀 후 그것의 분류가 되어줄 국적을 추측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까?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는 전시가 개최되는 도시에서 찾은 사물 또는 폐자재로 작품을 구성하거나 배열한다. 누군가가 한때 소비하고 버린 것들, 거주자가 떠난 뒤 남겨진 파편들이 혼합된 그의 작업은 지금 이곳을 연상케 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아무런 지역 정체성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루즈비예가스의 매체는 조각, 설치, 퍼포먼스 그리고 음악을 포괄하며, 작품의 생산 과정에 동료 작가, 큐레이터, 작곡가, 연주가 등 여러 협업자가 참여한다. 작품의 아이디어와 물리적 형태가 형성되는 매 단계에 즉흥, 불안정성, 외부의 개입이 깃들어 있는 그의 작업은 원본성과 고정된 정체성을 가볍게 지나친다. 그의 전시에 동일한 구성과 규격의 조각 및 설치 작품이 한 번 이상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Empty Lot> 2015 Mixed media
 Variable dimensions Installation view
Hyundai Commission Turbine Hall, Tate Modern,
London 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te Modern, London


크루즈비예가스의 작업은 대개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여 있거나 미약하게 연결된 것처럼 펼쳐진 때 묻은 물건들,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로형의 사물 더미, 물감이 칠해진 면을 향해 오므려진 듯한 종이, 얇은 줄이나 철사에 잠시 붙어 있는 것처럼 맞닿아 있는 깃털이나 머리카락 등의 요소가 한 공간에 산발적으로 놓인 모습을 띤다. 특유의 비정형적이고 비대칭적인 형태가 풍기는 불안정한 느낌을 묘사하는 표현으로는 ‘불안정성(precarity)’이 종종 등장한다.


2011년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월가점령시위(Occupy Wall Street) 이후 불안정한 삶의 양식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은 크루즈비예가스의 작업에서는 가까스로 균형을 지탱하고 있는 듯한 물리적인 형태로 발현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불안정성은 단순히 비판과 고발을 목적으로 고안된 장치가 아니다. 미술사학자 로빈 아델 그릴리(Robin Adèle Greeley)는 그의 작업에 있어 불안정성이 의미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Autoconfusión> 2015 
Wagon ‘Skoda Octavia 2002’ covered 
with pink and green satin paint, wooden 
stick, wire, chicken bones and sound 
150×420×1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그릴리는 크루즈비예가스의 작업이 “기억이자 가능성으로서 그리고 트라우마이자 재생으로서 불안정성이라는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1) 여기서 기억은 작가의 어린 시절 멕시코 아후스코(Ajusco) 지역에 살던 시절의 기억 그리고 가능성은 필요에 따라 제한된 자원으로 새로운 형태, 영역, 공동체를 발명해 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과거와 미래, 구축과 붕괴가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형태, 그리하여 상반된 힘의 작용으로 꿈틀대는 역동적 상태를 떠올리게 하는 크루즈비예가스 식의 불안정성은 ‘자가구축’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자가구축은 2007년 뉴욕 잭 틸튼 갤러리(Jack Tilton Gallery)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유사 사무실처럼 보이는 이 공간에는 책상, 의자, 서류 정리함처럼 보이는 사물들이 있지만, 사용하기 어렵게 어딘가 뒤집어진 것 같은 상태로 놓여있다. 작품의 긴 제목은 시처럼 혹은 노래 가사처럼 수수께끼 같은 파편들의 모음이다.2) ‘자가구축’은 영어로는 ‘Self-Building’ 혹은 ‘Self-Construction’으로 번역되는데, 이때 ‘Self’는 개인이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짓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물건들이 스스로 증식해 나간다는 의미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아를 구축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은 작품과 제목의 파편적 형식들과 그럼에도 그것들의 모음이 보는 이에게 전하는 인상이다. 관람자는 상품 영역 바깥의 사물이 자아내는 낯선 느낌을 인지한 상태로 그 사물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혹은 전혀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물질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가구축은 파편을 가능성으로 삼는 전략으로 무언가의 부족함, 생소함, 미약함을 잠시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크루즈비예가스는 자가구축의 배경이 되는 일화를 소개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아후스코에서 거주했던 집의 형태, 형성 배경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예술적 방법론으로 옮겨진 방식을 설명한다. 화산지대인 아후스코의 땅에 무단으로 들어가 집을 짓는 무리에 자신의 부모가 있었고, 그곳에는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몸집이 쌓이고 증식하는 집의 구조가 생겨났으며, 그것이 하나의 지역과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물질적 방식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는 일화에는 유머와 희망이 배어 있다.




<Untitled> 2010 Wood, beer caps,
 bulbs, roots, fabric, iron Variable dimensions 
Exhibition view at the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France 201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그는 이러한 우연적 연쇄작용을 작업의 방법론으로 끌어와 자신의 작업에서 동류의 유머와 희망을 작동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크루즈비예가스는 우연한 발견과 형태를 포용하는 한편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여러 사회적 제도와 관습들을 주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가 하는 일은 그 제도들을 자신의 작품과 언어로부터 의식적으로 분리해 내는 것이다. 일례로 자가구축은 ‘건축(arquitectura)’이 아닌 ‘구축(construcción)’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가 생산하는 형태는 시장, 국가, 건축 등의 크고 작은 제도 영역 바깥에서 만들어진 변종 혹은 혼종의 형태를 띤다.

작품에서 보이는 사물의 용도 변경, 맞춤 제작, 탈부착의 방식은 판매나 소비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설치물을 무대 삼아 이루어지는 악기 연주와 무용 공연도 이러한 맥락의 일부로, 필요에 따라 설치물은 조각인 동시에 공연자가 딛고 서는 무대가 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조각을 만드는 크루즈비예가스의 작업은 상품으로서의 미술을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추후에는 자가해체(Autodestrucción)와 자가결론(Autoconclusión), 자가혼란(Autoconfusión), 재건(Reconstrucción) 등의 여러 변주가 작가의 작업에서 다뤄지게 되는데, 모두 자가구축과 연동되거나 상호 보완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자가구축은 2007년 이후 크루즈비예가스의 작업 활동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된다.



<The Invincible> 2002 Rock, feathers
 and mixed media 45.7×38.1×11.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2012년 ‘도쿠멘타 (13)(dOCUMENTA (13))’에서 수행한 작업 <Auto-construcción: untitled non-productive activities>(2012)는 자가구축이 표방하는 우연적이고 유희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작가는 제작비를 제로로 설정해 두고, 자신이 어떤 작업을 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3) 이 작업을 위해 크루즈비예가스는 게임과 같이 규칙을 고안했다. 34개의 콘셉트를 각기 다른 색의 대나무 막대에 부여한 뒤 카셀을 돌아다니며 막대를 던지고, 거기서 남겨진 혹은 선택된 두 개의 막대에 해당하는 콘셉트에 따라 그 부근에서 어떤 물질을 찾아 기록했다. 퍼포먼스의 과정을 일부 기록했지만, 도쿠멘타가 개최되는 동안 아무것도 선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가 설정한 규칙이었다.


결과적으로 퍼포먼스는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에게 우연히 목격되는 무형적 기억으로 남게 되었고, 미술 제도가 생산하는 전시, 영상, 사진 등의 방식으로는 재생산되지 않았다. 기록되지 않은 이 프로젝트의 증거로 남은 것은 이후 책자 형태로 발행된 작가 노트와 그의 퍼포먼스에 사용된 도구들뿐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대개 수행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플럭서스 스코어(Fluxus Score)의 공연적, 일시적 특성을 닮았고, 또 도시 곳곳에 깃든 풍수의 기운을 거스르지 않기를 시도하는 영적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국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터빈 홀(Turbine Hall)에서의 전시 <Empty Lot>(2015)에서는 한층 더 시적인 희망을 담은 작업을 선보였다. 높은 층고의 이 거대한 공간에 크루즈비예가스는 축제에서 볼 법한 삼각기 형태로 나무 상자를 만들었고, 그 내부가 관람자에게 보이도록 경사진 형태로 설치했다. 상자들에는 각기 다른 런던의 공원에서 가져온 흙이 담겨 있었다. 무엇이 자라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시는 막을 올렸고, 작가는 전시 기간 동안 생명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규칙만을 세운 채 기다렸다.




<La Polar> 2002 Photo umbrella 
and peacock and pheasant feather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아무것도 심지 않은 곳에 나타난 새 생명은 크루즈비예가스 조각의 불안정한 형태처럼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불모의 장에도 무언가가 피어날 것이라는 작가의 예상과 은유를 보기 좋게 증명했다. 작가의 기대와 다른 결과에 다다랐을지라도 생명의 전망을 점쳐볼 때 떠올린 여러 시나리오는 관람자의 게릴라식 씨 뿌리기(Seed-bombing), 씨앗을 머금은 흙에 대한 인상 등 이미 기분 좋은 상상력을 포괄하고 있었다.4)

크루즈비예가스의 작업이 자신의 원점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빈곤의 초국적 형태와 그 정치경제적 조건을 발견하게 된다. 관련해서 작가는 제3세계에서 모더니티(modernity)가 추동하는 소비자주의를 경계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진본으로 판명된 제도를 복각하거나 그 안으로 흡수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빈곤을 진정성의 토큰으로 이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크루즈비예가스의 조각과 퍼포먼스는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조건이 실제로 존재하는 기억이라는 점을 금세 흩어져 버릴지도 모를 구술사를 전하듯 여러 구성으로 거듭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우연히 형성된 자아를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으로 긍정하고 있다. PA


<Horizontes> 2005
Acrylic enamel glossy pink paint 
and chalk-board green paint on 266 
found objects Dimensions variable Part 1 of 3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각주]
1) Robin Adèle Greeley, “The Logic of Disorder: The Sculptural Materialism of Abraham Cruzvillegas,” October, Vol. 151, 2015, p. 102
2) 언급된 작품의 제목은 <Autoconstrucción: Fragment: Low Budget Column, 2nd Floor Basement, (Handicap), Working Table Mock Up, Projects, Compost, Duplex, and Chucho’s Roof / Autocontrucción: Fragments: Columns de banjo presupuesto, Segundo miso, Sotano, (discapacitado), Trabajando, Bosquejo de mesa, Proyectos, Compost, Dúplex, y Techo de Chucho>(2007)
3) Haegue Yang, “Abraham Cruzvillegas by Haegue Yang,” BOMB Magazine, Summer 2013. bombmagazine.org/articles/2013/07/01/abraham-cruzvillegas
4)  Abraham Cruzvillegas and Mark Godfrey, “Part Three: Empty Lot,” Abraham Cruzvillegas: Empty Lot, Mark Godfrey ed. (London: Tate Publishing, 2015), p. 75



Portrait of Abraham Cruzvillegas 
Photo: Marén García



작가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는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문학가이자 개념미술가인 그는 조각, 비디오, 설치, 회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멕시코의 사회, 경제적 특성을 반영하거나 남미 특유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영상과 설치 작품을 완성한다.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전시를 선보였으며,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이스탄불 비엔날레(Istanbul Biennial)’,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 첫 번째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한 그의 작업은 여러 미술 기관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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