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가 어떤 작가인지, 또 어떤 작업을 하는지 다루기에 앞서 그의 이력을 짧게 살펴보자. 그의 가족은 중국인이지만, 작가는 사실 호주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을 ‘서구 출신’이라 설명한다. 외가 쪽은 청나라 후기에 중국 남부를 떠나 아프리카에 정착했는데, 당시 그곳은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던 모잠비크다. 이후 소비에트와 중국 공산당이 프렐리모(Frelimo: 모잠비크 해방 전선)나 레나모(Renamo) 정당을 지원해 포르투갈을 몰아낼 때 즈음 가족은 그곳을 떠났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당시 로이스의 할머니는 충칭에 거주 중이었다. 이 가족의 독특한 거주 이력은 그가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여러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거나 거주하는데 바탕이 된다. 그리고 현재 그는 홍콩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 작가는 덧붙여 근대화가 진행되던 시절 자신의 가족이 여러 나라의 정치적 이슈에 따라 이곳저곳을 이주해 살던 경험이 자신의 작업 방향성을 결정짓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얘기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나는 ‘서구’ 출신이지만, 동아시아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신이 그저 ‘근본 없는 세계주의자(Rootless Cosmopolitan)’인 것을 극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방법이다.”
<Kishi the Vampire> 2016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performance, kimono 20:00 (Animation Detail)
그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 감각’만을 쫓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은 ‘지식의 시스템’이라고 정의를 내린 로이스는 동시에 이 예술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딜레탕트식(Dilettante)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물론 미술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작품 활동에 임하고 예술을 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예술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 다양한 주제들을 심도 있게 다룬다. 작가가 가장 중점을 두는 테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역사와 현재의 관계, 정치·경제와 미학의 교집합, 동아시아의 역사 속 마약과 죽음 등으로 크게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는 줄곧 ‘매체를 찾는 작가’였다. 막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로이스는 관심사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뚜렷했지만, 어떤 매체와 방식을 활용해서 표현해야 할지 늘 고민했다. 초반에 설치와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을 주로 선보였는데, 만족하지 못했고 또 목말라했다. 그리고2012년에 3D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각종 소프트웨어를 자신이 직접 사용하면서 스스로 배워 나갔고 결국에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 만들고 싶은 캐릭터, 색감, 빛, 음향 등을 직접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만족했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그가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을 퍼포먼스로 해석해내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스크립트(음향)와 춤을 함께 표현해내고 홀로그램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3차원 형태로 변환해내는 것이다.
로이스 응 & 데이지 비세니엑스
(Royce Ng and Daisy Bisenieks)
<newyorkpostetprefiguratif> 2015 Performance 50:00
로이스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아편 박물관 트릴로지(Opium Museum Trilogy).’ 왜 아편에 관심을 두게 되었냐는 말에 그는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본 임칙서(Lin Zexu)의 동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다. 동상 밑에 적힌 “마약은 하지 마라(Don't Do Drugs)”란 문구를 읽은 그는 “과연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뉴욕 한복판에 이러한 글귀와 함께 기념되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임칙서가 관련된 아편과 중국, 그리고 아편 전쟁에 관한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아편이 동아시아 근대화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결국 로이스는 자신이 흡수한 역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기에 이르렀고, 만주국(Manchukuo), 조미아, 홍콩 세 지역을 베이스로 ‘아편 박물관 트릴로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1부 <쇼와의 유령>에서는 아시아 근대 국가의 형성 과정을 그려냈다. 일본이 중국 둥베이 지방에 세운 국가인 만주국을 배경으로 식민지 시대 관료이자, 수상(prime minister), 그리고 전범인 노부스케 키시(Nobusuke Kishi)와 할머니로 표상된 하위계층의 여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무대는 내레이션과 댄스 퍼포먼스가 결합되었다. 특히 정부 관료로서 키시의 삶과 이에 대비되는 할머니의 내레이션은 중국, 한국, 일본을 관통하는 하나의 굵직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마치 아편을 흡입했을 때의 몽롱한 느낌을 생생히 살려 식민지국의 초상과 더불어 억눌린 시대상을 표현했다.
<Queen of Zomia> 2018 Hologram, animation, performance,
pyramid, lighting, smoke 60:00 (Installation View) Photo ⓒ Park Suhwan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2018 MMCA 다원예술: 아시아 포커스>전을 통해 소개된 <조미아의 여왕>이 2부이다. 작품은 만주국에서 조미아로 그 무대를 옮긴다. 실존 인물인 올리브 양(Olive Yang)이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 작가는 피라미드와 같은 삼각뿔 안 중앙에 서서 직접 이야기를 읽어 나간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얘기한다. 첫 번째는 미국의 정치학자인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의 저서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The Art of Not Being Governed)』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저자는 동남아시아의 조미아를 집중적으로 살피면서 문자 언어가 없다는 점, 출입이 어려운 고지에 산다는 점과 같은 유목민족의 문화적 특징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얘기한다. 로이스는 더 나아가 조미아의 아편 재배가 20세기 국가에 통합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출현한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보았고, 이를 작품에 녹여냈다. 두 번째로 그는 이 작품을 뉴욕에서 보았던 임칙서의 동상과 연결한다.
19세기 아편 전쟁은 서양에서 아시아와 무역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아편을 끌어들인 것이 마치‘원죄(Original sin)’처럼 작용해 발발했다. 그리고 1970년대 버마, 라오스, 태국에 주둔한 중국 민족주의 군대는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아편을 다시 서양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결국 작가는 1973년에 당시 미국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 선언한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을 4번째 아편 전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렇듯 작품은 조미아의 올리브 양의 서사를 통해 동·서양의 아편 관련 이슈를 심도 있게 그려낸다.
<The Somali Peace Band Project> 2013 3 channel video
installation, Somali archive, performances
그는 “나는 ‘페퍼의 유령(Pepper’s ghost)’란 트릭을 사용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거울, 조명, 반사 등의 조합을 이용해 무대 위의 홀로그램이나 유령(spectre)을 흉내 내는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거 기술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프로젝터와 2D 홀로그래피 플라스틱으로 자신의 3D 애니메이션을 무대에 구현시켰고, 자신은 ‘강연자(lecturer)’로서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자신의 내레이션을 완성했다. <조미아의 여왕>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사운드다. 작가는 호주 출신 전자 음악가 존 바틀리(John Bartley)와 협업해 음향작업을 완성했다. 그는 ‘민족적인 음향효과’는 지양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나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전통적인 음악을 한국이나 유럽에서 관람객들이 들을 때는 ‘이국적인(exotic)’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내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에서 느끼는 감정의 종류를 표현하고, 음악과 현장이 일관되는 음악을 추구했다. 정리해보자면 로이스가 만드는 세상과 이야기는 모두 그가 하나의 주제에 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등이 종합적으로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은 <조미아의 여왕> 퍼포먼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차분히 구상하게 될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앞선 <쇼와의 유령>, <조미아의 여왕>에서 증명했듯이 그는 또 한 번 아편과 아시아 역사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 틀림없다. 그가 트릴로지를 구상할 때 정했던 세 나라 중 남은 것은 태국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 그것을 재구성하는 로이스의 목소리가 궁금하다. 자신을 ‘공허하다’ 표현하지만, 작가는 그 어떤 사람보다 단단하다. 그에게 단순한 것은 하나도 없다. 가볍게 꺼내기 어려운 마약‘아편’을 주제로 역사의 별책부록을 만듦으로써 로이스는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궈온 역사의 ‘아름다움’을 편찬하고 있다.
로이스 응
Royce Ng Ⓒ Photo Daisy Bisenieks
작가 로이스 응은 1983년생으로 현재 홍콩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는 2005년 멜버른 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스윈번 대학교에서 뉴미디어 학과 학위를 수료했다. 태국, 중국, 러시아, 체코, 독일, 호주, 네덜란드, 영국, 대한민국, 미국 등 전 세계 유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수많은 그룹전과 퍼포먼스 그리고 스크리닝을 진행한 바 있다. 지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 참여했고, 2018년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린 <2018 다원예술: 아시아 포커스>에서 <Queen of Zomia>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