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리는 자기가 속한 세계를 궤도 밖에서 들여다본다. 배운 대로 정해진 것만을 그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의 작품을 두고 청나라 중기에 궁중 화가로 활약했던 이탈리아 출신 화가이자 선교사 카스틸리오네(Giuseppe Castiglione)의 중국식 이름이 낭세녕이었으니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거나, 비슷한 시기 유럽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중국풍’ 스타일(시누아즈리)과 이콘(Icon)은 또 무슨 관계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 들어맞지 않는 사군자의 계절을 지적하며 아는 체 할 수도 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대거리를 향해 최해리는 단정한 표정으로 “왜 안 되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자신의 ‘동양화 전공’이라는 배경을 관습적인 틀 안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늘 흥미로웠다. 안될 것이 없어 보이는 현대미술 신에서조차 동양화를 다룰 때만큼은 여전히 불가침한 ‘정전(正傳)’이 존재하는 마냥 느껴질 때가 있다. 최해리는 “외국 작가들을 보면 자기네 역사든 남의 역사든 거침없이, 자유롭게 다루고 그 결과로 흥미로운 작품이 나온다”며 자신의 작품도 그런 맥락에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동양화를 “단위”라고 표현한다.
<희미하게 연동하는 둔중한 털물질(Weakly Interacting Massive Furry Matter)> 2017
HD 비디오 스크리닝(러닝타임 30분), 입을 수 있는 의상 조형물, 2-4명의 퍼포머,
포장된 음식, 혼합매체 죽전야외음악당, 경기 사진: pop con
특정한 물성, 필법, 사조에만 몰두하기보다 더 큰 관점에서 동양화를 이루는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사의 일부로 본다든지 어떤 작품이 탄생하게 된 정치적 역학 관계를 추적하는 식이다. 한 시대에 유독 많이 그려진 형상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누군가 일인자가 될 때 다른 이는 왜 무명작가로 남아있게 되었는지 등이 그는 궁금하다. 일례로 미술품을 실은 채 좌초된 방주가 발견되었다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담긴 <비가 내릴 것이다>(2012)는 전통 동양화와 청화백자 도자기를 전시했는데 이를 위해 18세기 조선 시대 회화사와 도자기 역사의 연대기를 참조했다. 가상 인물의 수집품을 공개하는 형식을 취했기에 이질적인 회화와 도자의 역사가 자연스레 병치될 수 있었다. 이처럼 짜여진 판 안에 그저 머물러 있지 않다 보니 리서치는 그에게 필수적인 과정이다. 최해리는 논문, 전시, 책 등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보를 검토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정보의 공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메운다. 리서치를 기본으로 하는 작업일지라도 사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문법보다는 분방한 상상력이 최해리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열쇠다.
<후사의 징후(A Portent of the Sequel)> 2016 부분 인용된 마원(馬遠)의 <세한삼우 歲寒三友>와
일식을 그림 금박과 검정회화 2점 외 종이에 채색, 금박, 혼합매체 가변크기 사진: 정진우
그만큼 많은 해석의 레이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역사는 남겨진 많은 데이터가 종합된 허구”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로부터 ‘데이터’와 ‘종합’과 ‘허구’를 건져내 보자. 작년 그가 공공예술프로젝트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에서 선보인 <희미하게 연동하는 둔중한 털물질>도 이 세 단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 작업은 공공미술이 꼭 조형물의 형태로 봉사하는 것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해 이전부터 모아둔 소유권이 불분명해진,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공공재가 된 사운드와 이미지를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비디오와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공공미술‘답게’ 지역(경기도 용인)적 특수성도 고려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소스에 현실적인 조건들을 영민하게 반영한다. 기본적인 구성은 있지만, 그 속에 어떤 메시지나 의도를 선명하게 깔아 두진 않는다. 오히려 그의 내러티브는 쉽게 읽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문학적인 내러티브와는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기억이나 지식에 따라 천차만별의 흐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오픈소스’인 셈이다. 관람자 역시 작품 속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변형해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Leaftoon #1> 2017 금박, 디지털 프린트 45.5×39.6cm
최근 만들고 있는 ‘Leaftoon’ 시리즈는 만화와 판화, 종교화의 특징을 차용했다. 유튜브(YouTube)에 공개된 동방정교의 이콘 만드는 방식을 배웠고, 휴대폰의 음성인식 서비스와 나눈 대화를 각색해 넣었다. 형식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정하는 데에 거침이 없는 최해리는 ‘원본’ 혹은 ‘진리’ 개념은 어찌 보면 우리가 믿기로 정한 허구적인 약속일 뿐이라고 여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미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언가의 원본은 이미 너무나 멀리에 있는 까닭에서다.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유일한 진짜, 본래의 것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이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최해리는 다만 미술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변하지 않는 온전한 세계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미술의 언어로 파고들어 감으로써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보르헤스(Jorge Louis Borges)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현실과 허구의 이분법을 깨고 더 넓은 지평을 맛보았듯, 세상을 보는 방식은 때론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바뀌어야 한다. 그것에 성공한 미술은 이제껏 하나의 질문을 던짐에 주저하지 않았다. Why not?
최해리
작가 최해리는 1978년 생으로 덕성여자대학교 예술학부에서 동양화와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2007년 스페이스바바에서의 <SMOKE, NOWHERE>를 시작으로 송은갤러리, 프로젝트 스페이스 16번지 갤러리현대, 단원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치렀고, 예술의전당, 인사아트센터, 사비나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경기도미술관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경기창작센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등을 거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