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진은 ‘서울 국제 드로잉 비엔날레 84’(문예진흥원 미술회관), <물질, 그 존재방식>(1984, 관훈미술관), <한국 현대미술 31인의 여류전>(1986, 관훈미술관), <에꼴 드 서울>(1986, 관훈미술관), <한국미술의 최전선전>(1987, 관훈미술관) 등등 비중 있는 전시에 참가한 후, 1988년에 홀연히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에 정착, 1991년에 프랫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미술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는 현재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서 한국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성공한 작가로 미국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뉴욕 화단에서 조숙진이 거둔 성과는 매우 화려하다.
미국에서의 정착 초기에 그는 뉴욕에 있는 오케이 해리스 화랑(O.K. Harris Works of Art)의 전속작가가 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짧은 글을 통해 그가 뉴욕화단에서 거둔 작가적 성공의 지표를 일일이 증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도널드 커스핏(Donald Kuspit)을 비롯하여 엘리너 허트니(Eleanor Heartney), 로버트 모건(Robert C. Morgan), 조너던 굿맨(Jonathan Goodman), 리차드 바인(Richard Vine) 등등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리뷰기사와 작가론을 집필하는가 하면,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와 『아트뉴스(ARTnews)』 등 미술전문지들이 그의 개인전에 관한 리뷰 기사를 싣고 있다. 또한 여러 권의 단행본과 앤솔로지를 비롯하여 수십 여종에 이르는 문헌 자료는 조숙진이 국제적인 작가로 손색이 없음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Below> 2012-2015 200 wood totems, oil, acrylic, ink on cedar wood Dimension variable
Ⅱ. 조숙진은 회화를 비롯하여 입체, 조각,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공공미술(public art) 등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전방위 작가이다. 종횡무진 펼쳐지는 그의 상상력을 담기에는 이 다양한 분야와 매체들이 부족할 정도이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작품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제공한다면, 그는 반드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이에 보답을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작업에 임하는 성실한 자세와 치열한 작가 정신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길거리를 비롯하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발견된 사물(found object)’을 사용하여 이를 가공, 작품화하는 것이 조숙진의 오래된 창작 방법론이다. 그는 길을 걷거나 어떤 장소를 방문했을 때 눈에 띄는 특정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이를 가공, 매혹적인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버려져 퇴색한 나무판자를 비롯하여 의자, 책상 다리, 죽은 나뭇가지 등등 주로 나무로 된 사물들은 그의 거대한 설치작업의 기본재료가 된다. 그가 사용하는 이러한 사물들의 특징은 본래 목적의 기능을 다한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점이다. 사회에서의 효용가치를 다한 이 죽은 사물들은 조숙진의 상상력을 통해 거듭 태어나 예술적 사물로서의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 숲속에 버려진 나뭇가지와 부러진 책상다리, 폐기처분된 의자들은 그에 의해 예술적 문맥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너의 죽음을 생각하라(Memento Mori)’라는 문구이다.
<Chairs> 2010 About 120 chairs collected from 2000-2009 in New York Photo Michael N. Meyer
이 라틴어는 원래 고대 로마에서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고 개선을 할 때, 행렬의 맨 뒤에 있는 노예들이 외쳤던 구호이다. 삶은 덧없다는 준엄한 경구이다. 이 바로크적 비장미를 담고 있는 문구가 조숙진의 오브제를 사용한 설치작업을 볼 때 마다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으로 효용가치가 소멸돼 버려진 사물의 모습이 죽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 죽으면 장례 절차를 거쳐 무덤에 들어가듯이, 버려진 사물들은 폐기처분돼 쓰레기장으로 보내진다는 준엄한 사실이야말로 인생에 대한 기막힌 비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숙진의 설치작업은 때로 방대한 규모로 펼쳐진다. 미술관의 높은 천장에 가득 매달린 나무파편들은 그 압도적인 규모로 인해 장엄한 비장미와 함께 일종의 숭고미를 동반한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우선 시선을 끄는 사물들의 집단적 양태에 압도된다. 그리고 찬찬히 바라보며 음미할수록 폐기된 사물들의 처연한 모습을 통해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 평범한 사물을 통해 인생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감정을 진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조숙진의 예술가적 재능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공동체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 바로 조숙진의 공공미술 작업들이다.
<The Face of Heaven> 304 LED lights through holes on wall (36x10 feet),
sound, mixed media sound: excerpts from “Elixir”, Derek Bermel Photo: Taehoon Lee
2001년에 브라질의 바히아에 위치한 죠아오 우발도 히베이호 학교(João Ubaldo Ribeiro School)에서 진행한 벽화작업에서 이 학교 학생들과 함께 벽화를 그린 것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빈 드럼통을 야외에 설치하고 그 안에 관객들이 들어가게 한 <삶의 색깔(Color of Life>(1999)은 이 계열에 속하는 공공미술 작품이다. 2009년에 제작한 <소망의 종(Wishing Bells/To Protect & To Serve)>은 L.A 시내 LA 단기수용소(LA Metro Detention Center) 입구에 있는 퍼블릭 광장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으로 정사각형의 모듈을 갖춘 거대한 사각 입방체 구조물에 108개에 이르는 종(鐘) 풍경(風磬)을 달고 얇고 긴 장방형의 동판에 ‘친절(Kindness)’, ‘미래(Future)’, 등 다양한 문구를 새겨넣은 작품이다. 시민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이 거대한 공공미술 작품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공동체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Color of Life> 1999 70 metal barrels, wood, metal bar, thread rod, cement, oil,
12×18×6 feet Photo Jin Kyo Socrates Sculpture Park, L.I.C., New York
Ⅲ. 조숙진의 드로잉은 설치나 오브제 작품을 위한 밑그림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 완벽한 회화작품이기도 하다. 종이나 딱딱하고 두꺼운 카드보드를 이용하여 능숙한 붓질로 그린 조숙진의 이 드로잉들만큼 동양의 정서와 맛을 드러낸 작품도 드물다. 검정색 위주의 이 드로잉 작품들은 모필의 맛과 표현력을 한껏 머금고 있다. 한국에서 시작하여 뉴욕으로 옮겨간 조숙진의 작가적 이력은 이제 그 오래된 연륜만큼이나 성숙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정한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작업에 알맞은 매체와 재료를 찾아 삶과 죽음, 숭고, 비장미, 또 때로는 거룩한 종교적 법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조숙진의 설치작업은 이제 숙성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 원숙한 작업의 세계에 걸맞는 국제적인 작가로서 세계 미술계의 평가를 기대해 본다.
조숙진
작가 조숙진은 1960년 생으로, 조각, 회화,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인물이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뉴욕을 거점 삼아 활동하고 있다. 헌팅톤 미술관, 테너먼트 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등 30여회 개인전을 열고, 단체전에 100회 이상 참여했으며, 하종현미술관(2008), 폴록크래즈너(1996), KAFA상(1993) 등 주요 예술상을 받았다.